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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Sep 09. 2020

마지노선

4월에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고, 처음 한두 주 이후로는 계속해서 수업 영상을 제작해왔다. 친구에게 파워포인트로 영상 만드는 법, 편집하는 법 등을 배웠다. 처음에는 20분짜리 영상 하나를 제작하는데 족히 두세 시간은 걸렸다. 지금은 텍스트 선정이나 내용 구상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직접 동영상을 만드는 시간 자체는 길지 않다. 나는 영어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아예 쓰지 않는 편인데, 주위에서 온라인 수업에서도 평소처럼 교과서를 쓰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을까라고 우려했다. 학부모들이 그런 파격은 원치 않을 거란 의견이었다. 그 말을 듣고 초반에 다소 고민했지만, 나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용이 조직된 텍스트를 이용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결국 하던 대로 수업을 했다. 운이 좋았는지 고맙게도 아무 일도, 아무 민원도 발생하지 않았다. 온라인 수업 기간이 끝나고 온 학생들은 ‘그래도 영어 수업은 재밌었어요’라고 말해줬다. 직접 수업을 구상하면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엮어 일관된 흐름으로 안정된 수업을 해나가기 쉽다. 나는 실시간 대면이나 치밀한 피드백 등으로 나보다 훨씬 더 수업에 공을 들이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내 수업은 홍보하거나 권장할 수준은 결코 아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소박한, 내 수업인데 최소한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든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이게 혼란의 시기에 내가 지키고 있는 마지노선이다.


요즘 학부모들 사이에 온라인 수업에 대한 원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특히 초등은 수업 영상의 질, 피드백이 없다는 점 때문에 불만이 크다고 들었다. 사실 최근 나도 친한 분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2학기가 되어서도 이러면 어쩌냐'라는 말에 같은 교사라도 실드를 쳐줄 수가 없단 의견, '이제는 완전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 시점이다'라는 말 등을 나눴다. 물론 동영상 제작 능력, 빈틈없는 피드백 등이 수업 전문성의 유일한 지표는 아니다. 하지만 상황에 맞는 유연함과 최소한의 성의는 보일 필요가 있다. 내가 들은 어떤 경우, 몇몇 선생님들이 학습 자료를 검색해 올리는 것조차 못하겠다고 나자빠져서 내 친구 혼자 학년 전체의 학습 동영상을 다 찾아 올리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교사들이 소수지만 존재하고 그분 하나에 연결된 학생과 학부모는 수십 명이다.


나는 상식이 없고, 괴상한 학부모 10-20%는 상수라고 본다. 그렇게 막 나가는 경우는 개개 교사가 아닌 공권력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권력이 무능해 대응이 안되고 있다. 한편 교사는 직업인이다. 우리 사회에 교사란 직업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제대로 된 합의는 아직 없지만,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교사가 70-80% 이상이란 합의는 나와줘야 한다. 그래야 방어선을 치고, 훗날 교사집단이 교육개혁을 주도할 중심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휩쓸리지 않고 변화를 주도해가고 있는가.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확보되고 있는가. 요즘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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