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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Nov 27. 2020

민주적으로, 교육적으로

성평등 영화 상영 중학교 교사, 아동학대 혐의 불기소 처분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811500098&wlog_tag3=naver


광주 도덕교사 사건은 처음부터 아동학대 범죄 성립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학생들이 느낀 불쾌감과 수치심만을 기준으로 학대행위라   없다. 교사가 어떤 유형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교육적 논란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악의적, 가학적 의사가 없었으며, 보편 사회 윤리에 비춰볼 때도 비난 가능성이 높지 않아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검찰의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물론 검찰 조사 결과가 실체적 진실과, 절대적 정당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애매한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한계도 인정해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애매함을 처벌과 일벌백계의 도구로 삼기보다, 애매함을 계기로 논의를 확장하고 교사의 소신과 현실의 맥락을 조율하는것이 교육적 맥락에서 합당하다. 이는 해당 선생님에게만 적용해야 하는 기준이 아니다. 사람을 기르고 보호하는 일을 하는 교육자들이 기본적으로 인간을 향해 견지해야  자세이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성 비위 사안이 아닌, 장학과 의사소통의 문제로 풀 수 있었다. 본 수업에 대한 비평 역시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 영화 ‘억압받는 다수’의 중1 수업 자료로서의 적절성, 교사의 수업 중 발언이나 인용, 그에 쓰인 어휘 또한 모두 수업 비평의 대상이다. 그 이유는 첫째, 수업은 엄연한 공적 행위로서 어떤 수업도 비평의 성역이 될 수 없다. 둘째, 수업 비평의 맥락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그들의 목소리에 대한 다층적 해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영화 ‘억압받는 다수’가 기존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영화이므로 학생들이 느낀 불편과 충격이 불가피했다는 의견에 나는 교사로서 동의하지 않는다. ‘지적 충격’과 ‘감각적, 정서적 충격’은 다르다. 예를 들어 식민 지배의 피해국인 줄로만 알았던 한국이 베트남에서 자행한 행위를 알았을 때, 당연하다고 인식해왔던 사회 문화적 현상에 개입하는 자본의 논리를 알았을 때, 과학적 오개념이 깨질 때 지적 충격이 발생한다. 반면 폭력물, 고어물 등을 보고 느끼는 충격은 일반적으로 감각적, 정서적 충격에 가깝다. 우리가 불특정 다수의 학생들이 함께 하는 수업을 통해 권장할 것은 지적인 충격이지, 감각적-정서적 충격이 아니다. 영화 ‘억압받는 다수’는 지적인 충격도 주지만, 14살 학생들이 보기에는 지적 충격을 압도하는 정서적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렇듯 '수업 비평'의 맥락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해석해야 성 비위 프레임을 깨고, '교사의 소신' vs '학생들이 느낀 수치심' ,  '진보적 성교육' vs '보수적 성교육' 이라는 단순 도식의 틀도 해체할 수 있다. 물론 수업 비평의 목적은 수업을 향한 난도질이 아니라 교육의 질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의 범위, 수업에서 오해와 갈등이 발생했을 때의 해결방법의 모색 등 교육적 맥락에서 건설적인 논의로 확장할 여지가 크다. 이제라도 논의의 초점을 이 지점으로 옮겨야 한다.


여성 단체와 전교조여성위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소거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이해한다. 또 '배이상헌 지키기 모임' 구성원의 일부가 학생들을 무지몽매한 대상으로 왜곡해 댓글 등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면, 특히 그런 발언을 한 이들이 교사라면 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하지만 여성단체와 전교조여성위의 행보에도 여러 측면에서 이해할 수 없는 처신이 보인다. 예를 들어 어제 전교조여성위는 [''광주 H중 학생자치회의 입장문'에 전교조는 응답하라']는 성명서를 냈다. 여성위는 H중 학생자치회의 입장문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학생들의 의지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광주H중 학생자치회의 입장문은 배이 교사에게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리라 요구하며, 배이 교사가 '여자를 꼬시다가 안되면 강간해 버려라'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 등을 실었다. 학생들이 징계 요구를 하는 건 자유라 해도, 사실 관계가 틀린 내용을 입장문이라 공표하는 것은 문제이다. '여자를 꼬시다가 안되면 강간해버려라'는 발언에 대해, 해당 교사는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고, 검찰도 이를 인정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피해 진술을 한 학생이 위의 발언을 들었다고 주장한 맥락은 (일대일 상황이 아닌) 수업 상황인데, 이를 주장하는 학생은 단 1명이다. 정황상 피해 진술을 한 학생이 교사의 발언을 잘못 듣고 해석했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고, 그렇다면 이에 대한 지속적 주장은 배이 교사에 대한 명백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성인인 우리가 현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오해와 실수가 있고, 자의적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학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학생에게 보여야 할 자세는 학생의 발언은 무조건 옳다는 맹목적 지지가 아니다. 사실과 의견의 구분, 스스로의 발언에 대한 책임 의식, 권위를 향한 성역 없는 비판 의식, 타인에 대한 공감과 현상에 대한 성찰 능력을 갖춘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조력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이다. 객관적 사실에 대한 비판적 사고 없이, 학생들의 주장이니 무조건 옹호하고 옳다고 보는 태도는 학생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을 절대적 약자로 환원하고 대상화하는 태도에 가깝다. 시민이자 교육자로서 책임 있는 자세라 보기도 어렵다.


이 사건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그래서 너무 멀리 왔고, 당사자들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남겼으며, 원인과 결과가 얽혀 버렸다.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의견과 관점'의 차이가 대결하는 곳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맹목적 지지, 무차별적 비난, 마녀 사냥, 인권 침해, 조롱과 막말이 횡행하는 곳에 민주주의는 설 곳이 없다. 민주주의는 다름과 이견을 포용하면서도 냉철하고 비판적 사고능력을 갖춘 시민들이 생성한 공론장을 필요로 한다. 단판 승부를 내겠다는 태도를 버리고, 이 공론장에서 최대한 많은 이해과 설득이 발생하도록 노력하는 것. 이것이 이 사건을 가장 민주적이고, 가장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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