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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Dec 30. 2020

광대와 팔방미인?

교사의 자질, 교직에 적합한 성격

교직 생활 초년 무렵, 어떤 선생님이 나를 대상으로 심리검사와 짧은 면담을 진행했다. 본인의 학위 취득을 위한 간단한 활동이라 자세한 결과 분석은 없었지만 내게 '자존감이 높으나 교직에 적응하기 힘든 기질'이란 말을 남겼다. 학교 생활이 답답할 때마다 정말 내가 교직과 맞지 않는 사람일지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나는 '교직에 잘 맞는 성격'을 규정하기 어렵다.


흔히 다방면의 기술에 두루 능한 사람이 초등교사에 최적화되었다고 말한다. 여러 교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 비춰볼 때 일리 있지만, 여러 기술에 두루 능한 기능인이 교육전문가의 필요충분조건이냐고 물으면 동의하기 어렵다. 임용시험 형태를 보면 교사의 자질은 단편적인 '정보 암기 능력'이고, 특히 수업 시연 평가 맥락에 비추면 교사는 '광대'가 되어야 한다. '이럴 땐 이렇게!'식의 팁을 강조하는 연수 기획자들에게 최고의 교육자는 '임기응변의 달인'인 것 같기도 하다.  


교사의 자질, 교직에 잘 맞는 성격 등의 개념이 삼천포로 쉽게 빠지는 이유는 '학교의 존재 의의', '사회적으로 합의된 교육의 목적', '교사의 존재 가치' 등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간단히 생략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 대한 고려도 생략했다. 제조업 중심 고속성장의 시대가 요구했던 교육과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중심 사회, 인간 중심, 저성장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 전문성과 리더십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효율성과 가시적 성과를 중시하고, 사람을 도구화하는 관점을 당연시하던 시대에 다방면의 기능을 갖춘 교사는 활용도 높은 인재다. 또한 정해진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소위 휘어잡으려면 광대 같은 혹은 연극배우 같은 카리스마를 가진 교사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성과보다는 성장을 강조하는 사회, 대화와 소통, 수평적이고 투명한 권력 구조를 지향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건 전문가적 리더십이다.  

나는 전통적 기준에서 보면 초등 선생으로 맞지 않는 성격인 것 같다(상담심리를 공부한 몇 분이 실제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기능보다 이론과 사고에 강하고, 말보다 글이 편하고, 꼼꼼하지 않고, 임기응변에도 능하지 않다. 그러나 솔직히 내가 교사로서 엉망진창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개인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교사로서의 내 최대 장점은 학생들에게 에너지를 줄 뿐 아니라 받을 줄도 안다는 점이다. 소통하고 연결되려는 욕구가 크기 때문이다. 또 내가 가진 재능 자체는 크지 않아도 좋은 것을 보면 (그게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치이든) 알아볼 수 있는 감식안이 있다. 이건 실제적인 기능만큼이나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소소한 능력들도 언젠가는 교사의 자질 목록에 포함될 날이 오길 기대한다. 물론 팔방미인형, 연극인 같은 교사들도 필요하다. 다만 학교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인격이 다채롭게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하고, 이는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마찬가지다.   


커버 이미지 : Tim Eitel, <Mountain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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