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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an 06. 2021

받아쓰기

수업의 한 주제마다 간단한 형성평가를 한다. 온라인 수업 기간에 오히려 더 빠짐없이 했다. 수업 중 학생 반응을 직접 확인할 수 없으니, 의도한 대로 학습이 이뤄지고 있는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나는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는다. 몇 년간 어떤 민원도 받지 않았지만 학부모들이 내 수업을 직접 보는 상황이 되자 지나친 파격이라 할까봐 은근 신경이 쓰였다. 교과서가 아닌 텍스트를 사용하더라도, 교과서 내용 이상으로 학생들이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조바심도 있었다. 다소 한심하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평가를 도구삼아 나 혼자 계속 증명한 셈이다. 


형성평가를 할 때 고전적인 받아쓰기 활동을 자주 한다. 학생들이 클릭과 타이핑만 하면 자동채점까지 끝내주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나는 학생들이 손으로 글씨 쓰는 활동을 선호한다. 소리를 듣고, 발음을 연상하고, 문자를 인지해 쓰면서 뇌의 여러 영역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독재자스러운 내 면모도 매번 느끼지만, 받아쓰기를 하는 동안 교실에 흐르는 완벽한 침묵은 아름답다. 어쨌든 온라인 기간 내내 아등바등 종이 학습자료를 만들어 나눠주고, 학생들이 올 때마다 매번 검사했다. 학생들이 학교 오는 날에 모든 걸 허겁지겁 해결하니 전쟁 같았다. 


내가 너무 고집을 부리나 싶기도 하다. 몇 년 전 어떤 분은 이렇게도 말했다(스스로 진보성향이라 자처하는데 어째 나와는 사사건건 부딪쳤던 분). '영어 수업에서 읽기, 쓰기, 철자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부분을 강조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영어를 못하니 중요한 건 흥미와 재미'라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의 영어가 싫었다. 유창성과 정확성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쓰는 영어는 성차별적이고, 배려가 없고, 문화적으로 닫힌 언어였기 때문이다. 나는 지적으로 건전한 언어교육을 하고 싶다. 과거 한국의 문법 위주 교육이 문제였던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의 언어가 저질스러운 게 그 탓은 아닌 것 같다. 또 내가 가르치는 방식이 완벽하지 않아도 적어도 시류에 휩쓸리거나, 이분법적인 학습방식에 매몰되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고민은 한다. 나는 강제적인 시대 전환기에 신인류를 가르치고 있는데, 내가 믿는 ‘진짜’의 허상에 매달려 현실을 부정하고 있나 싶어서다. 물론 수업의 자잘한 방식이나 테크닉에 국한된 고민은 아니다. 내가 제대로 방향을 잡고 있는지, 큰 흐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기분이 요즘 자주 든다. 변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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