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차를 바꿨다. 정확히 말하면, 같이 사는 분이 차를 사면서 그분 차가 내 차가 되었다. 지난주까지 내가 몰았고, 엊그제 영면한 차는 15년 된 아반떼 스포츠였다. 몇 년 전 운전 연습용으로 받은 차였는데, 내가 새 차 따위 필요 없다고 고집을 부리며 쭉 몰고 다녔다. 언니와 동생은 그 차를 볼 때마다 ‘누가 버리고 간 차 같다’, ‘보닛이 무광이다’라고 놀렸다. 제발 바꾸라며 애원도 했다. 학교 사람들도 내 차를 알았다. 나로선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차종인식 장애가 있냐라는 말을 들을 만큼, 누가 어떤 차를 모는지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겨우 자동차 따위로 사람을 가늠하고, 자동차 따위에 인정욕을 투영하는 습성들을 남몰래 경멸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나라고 그런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우리 집 거실에는 볼프강 틸만스라는 작가의 사진전 포스터가 걸려있다. 관심 없는 사람이 들으면 깜짝 놀랄 가격을 주고 구했다. 신나게 받아 야무지게 걸어두었는데, 막상 우리 집에 온 그 누구도 사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았다. 볼프강 틸만스의 이름을 언급하기는커녕 포스터에 관심도 없었다. 그때 나는 조금 실망했다. 나는 타인의 인정 따위 필요 없고, 취향의 정확성보다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며, 단지 내 영혼이 쫓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싶었지만 속물근성과 허영심은 나도 어쩔 수 없는 건가 싶었다. 경박해 보이는 인정 욕구, 내가 보는 아름다움을 누군가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란 욕망은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르다. 어쩌면 내가 버려야 할 것은 혼자만의 쾌락 속에서 완벽한 만족을 쟁취하겠다는 강박이다. 인간의 허영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이를 자기표현의 욕구와 조화시켜 승화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좀 더 성숙하고 자유로운 인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진 WOLFGANG TILLMANS / LOUISIANA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