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15 (페이스북)
내가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라는 글을 쓰고 많은 고민과 논의, 시비 끝에 얻게 된 결론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이상한’을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폭탄' 교사로 정의 후 진행하는 논의는 의미 없이 흐르기 쉽다. (사실 변변찮은 내 책도 괴상하고 상식 없는 교사 이야기는 맛보기로 끝나고, 중반부터 성과급-교대-교원노조-관료제 등 학교 문화정치 비판으로 흘러간다. 결국 책 속에서 말했던 ‘이상한’은 ‘체제 순응적, 무비판적’의 뜻이었다)
다시, 왜 ‘이상한 교사’를 ‘정신이 이상한 폭탄’으로 정의하면 실익이 없을까. 이미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직무유기, 책임 방기, 언어·신체 폭력 등은 예외 없이 법대로 처리하는 게 맞다. 법이 없다면? 법을 만들어서 법대로 해야 한다. 법 적용을 안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법 적용을 안 하는 사람들을 법대로 처리하고, 법대로 처리 안하는 사람을 다시 법대로 처리하고, 다시 법 법 법 이렇게 흘러간다. 그래도 안 된다고? 그렇다면 문제는 다시 제자리다. 있는 법도 제대로 못 쓰는 사람과 문화가 문제다.
나의 지인은 언론인이다. 회사에 정말 이상한 사람이 있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어폭력과 중상모략의 대가로 누가 봐도 문제가 있었는데 고위 간부였단다. 이 사람이 결국 회사를 그만두긴 했는데 그 과정은 파란만장했다. 이 회사는 몇 년 간 수 차례 장기 파업을 했고, 개고생 끝에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며 사장이 교체됐다. 이전 사장 밑에 있던 자들이 부역자로 몰리는 압박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안 그래도 정신이 불안했던 자가 더 불안해져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나갔다(알고 보니 정말 정신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 이빨 세다는 언론인들도 사람 하나 다루는 게 그렇게 힘들었다. 사장이 해고하는 것도 말이야 쉽지, 관점에 따라 정치보복과 마녀사냥이 되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사회 어디에나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있다. 만약 명백한 정신 질환이라면 처리와 통제보다 '조치와 치료'의 관점이 필요할 것이다. 정신이 아픈 것도 아닌데 법망은 교묘하게 피하며 배째고 막가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볼 땐 이런 경우가 더 강적이다. 괴랄한 관리자 한명의 만행이 꼭 그 사람 하나의 탓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처럼 (그들 주위에 꼭 순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괴랄 교사의 경우도 학교 탓, 교사 탓, 관료 탓 등으로 칼로 무 베듯 책임 소재를 나누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외부 압력도 필요는 하겠지만 이게...얼마나 복잡하고 리스크가 큰지는 모두 안다. 결국 구성원들이 내부 문화를 직시하고, 교사의 책임 범위를 합의하고, 개인의 책무성과 공동체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방안을 치열하게 논의해 가는 과정이 (느리더라도) 답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