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24. (페이스북)
어제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 한 분에게 전화가 왔다. 올해 저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너무 지치고 힘들어 아이들이 싫어지기까지 한단다. 남일 같지 않아 크게 웃고 말았다. 나는 요즘 주당 21시간 체육 수업을 하고 있는데 내가 원래 이런 인간이었나 싶을 만큼 벌컥 화가 나는 일이 많다. 안전 문제 때문이라는 변명이 있긴 하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다. 체육 수업을 하면 아이들이 내 말을 이해하고 있는지 즉시 몸으로 드러난다. 절대로 규칙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체육시간이라 흥분해서) 절대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는다. 넓은 공간에서 같은 말을 자꾸 하다보면 목도 아프고, 머리 끝까지 화가 솟는다. 나는 전화한 선생님과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다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요새 아이들이 제 말 못 알아듣고 엉뚱하게 움직일 때마다 이런 생각 자주 해요. 사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별로 중요한 사람들이 아닌 거야. 크하하....선생님네 반 2학년의 눈으로 보면 사실 그렇잖아요. 오줌도 마렵고, 게임도 하고 싶은데 내 앞에 키 크고, 얼굴 허연 여자 하나가 막 알짱거려. 그리고 막 수학책 68쪽 펴라, 휘파람 불지 말아라...이래라 저래라해. 나는 요즘 애들이 내 말 못 알아듣고 엉뚱한 행동해서 짜증날 때마다 혼자 이렇게 생각한다니까요. ㅎㅎ아...애들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이 아이들이 멍청하거나, 내가 설명을 못해서라기보다 그냥 원래 그런 거다. 지금 얘네 눈에 나란 사람은 그냥 맥락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이다. 애들에게 나는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수많은 자극 중의 하나다. 그러니 가만히 앉아 귀담아 듣는 거야 말로 신기한 현상이다...하하하하!!” / 나와 그 선생님은 한바탕 웃고 통화를 끝냈다. 그 분은 속이 좀 풀렸다고 하시던데 과연 그랬을지는 모르겠다.
물론 교사는 중요하지만 어찌 보면 사실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아이들 하나하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스쳐 지나가는, 몇 년 지나면 얼굴조차 희미해질 존재가 확실하다. 내가 진심을 다해 좋은 말을 한다고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사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어떤 실수를 했다고 심대한 트라우마를 형성할 만큼 중요한 타자라 보기도 애매하다.
연차가 어느 정도 된 교사들은 경험했을 텐데, 졸업한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깨닫는 바가 있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건 내가 심혈을 기울였던 수업이나 교육 활동들이 아니다. 오히려 사소한 나의 행동과 버릇, 실수, 나로선 기억조차 희미한 에피소드들을 끄집어내 재미있었다고,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그럴 땐 좀 허탈해지기도 겸허해지기도 한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학생들에게 나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각자는 매우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들이지만 사실 학교에서는 내가 얼마나 특별하지 않은지를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언젠가 내가 얼마나 특별하지 않은 사람인지를 깨닫는 특별한 날이 올텐데 겪어보니 그건 참 괜찮은 일이라고.
알아들을 사람은 재깍 알아듣고, 한 10년 있다가 '아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이 뜻이었나?'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즉시 흘려듣고 말았을 가능성이 99%. 뭐ㅎ 그래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