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처음으로 전문가와 심리 상담을 했다. (교직원공제회 회원에게 제공되는 양질의 무료 프로그램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 참고하시라). 두어 시간의 대화, 심리검사 분석 끝에 상담사님은 내게 '정서적으로 매우 성숙하고 겸손한 사람'이라 말했다. 낙천성과 감수성 지수가 매우 높고(상위 1프로),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낮아(하위 1프로) 주위에서는 에너지 많고 활기찬 사람이라고만 보기 쉽지만 내면이 매우 성숙하단 거였다. 성숙하다는 말이 어색해서 나는 웃기만 했다. 2회 상담 후, 나와 상담사님은 '이제 하산할 때'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기분 좋게 이별했다.
내게 어떤 의미에서 성숙하다고 하신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교류하며 성숙하다고 느꼈던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공감능력이 뛰어난데 그것이 내집단이나 내가 속한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전반의 시공간을 아우른다. 이들은 가까운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지만 관계 속에 매몰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부모, 배우자, 자녀, 직업인임에도 이와 별개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들은 독립과 자유의 무게와 그로 인해 치르는 비용을 인식하고 있다. 성숙한 사람들은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힘들 때는 고통을 토로하지만 그 와중에도 정중함과 품위를 잃지 않는다.
내가 미성숙하다고 느껴왔던 사람들의 특징은 반대라고 보면 된다. 공감능력이 없거나 제한적이라 내집단 편향에 쉽게 휘둘린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역할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부모, 배우자, 직업 따위를 빼면 과연 저 사람이 누구인지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이들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징징대는 방식을 주로 택한다. 그 결에 주위 사람까지 힘들어지는데 정작 본인은 이를 알지 못하고, 그 징징댐을 통해 조금의 성장도 이루지 못한다. 어떤 미성숙한 사람들은 고통을 외면하거나, 가면을 쓰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흔히 늙음-성숙/ 젊음-미성숙을 연결시키는데 내 경우는 완전히 반대다. 내가 평소 성숙하다고 느꼈던 사람들에게 나는 동시에 '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스스럼없이 대화하다 갑자기 상대의 나이를 깨닫고 '아니 이 사람이 이렇게 나이가 많았나?'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반대로 미성숙하다고 느꼈던 사람들은 어떤 소재로 어떤 방식의 대화를 하든, 그들이 트렌드에 박식하든 말든 경직성을 뿜어냈다.
결국 내 기준에서 성숙한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젊고, 유연하고, 소통의지가 강한 이들이다. 물론 '젊음'의 의미는 육체의 빛남에 국한되지 않고, '유연성'이 쉬운 타협의 의미는 아니며, '소통의지'는 마당발에 말이 많은 성품 정도로 수렴하는 의미가 아니다.
커버이미지 Bo Bartlett - Siren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