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20. 페북 글
내가 운이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가까운 곳에서 내가 존경할 만한 남교사를 자주 보지 못했다. 일단 내가 일해온 지역과 학구의 남교사 수가 현저히 적은 데다, 지나치게 승진에 목매며 굽실대거나(승진 욕망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은데 꼴 보기 싫게 욕망하는 자들이 있음), 어린이들이 그렇게 싫으면 왜 초등교사가 된 건가 싶을 만큼 학생과의 관계 양상이 형편없는 분들도 봤다. 그런데 최근 멋진 동료 교사를 만났다. 이 교사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을 아끼고, 가르치는 걸 즐거워하며, 업무 처리하는 양상이 진취적이고 자기 주도적인데 심지어 효율적이고 창의적이며 맙소사, 일을 그렇게 많이 하고 생색도 내지 않았다. 내가 교장이라면 얼마나 고마울까, 우리 분회에 있었으면 100 원주고 얼른 모셔올 텐데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와 관련한 일련의 충돌 소식이 들려왔다. 듣자 하니 그 교사가 누군가에게 된통 핀잔을 먹은 이유는 싹싹하지 않고, 미리 찾아와 인사하고 상의하지 않았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리더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건 엄청난 실무능력이나 철의 이성, 완벽한 인품 같은 것들이 아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 잘한 일은 잘했다는 시그널을 보내고, 조직에 삑사리가 나면 스스로의 의지로 책임을 폭넓게 인식하고 방향을 조율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미리 찾아와 인사를 안 했네 어쨌네 따위로 사람을 평가하는지 모르겠다만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있는 게 현실이다. 제도적 측면도 문제지만 이런 문화 속에서 수많은 교사들의 선의와 열정이 무뎌지고, 똑똑한 사람들은 아웃사이더가 되어간다. 이 와중에 '사람 보는 눈은 제각각이니 인정해줘야' 한다는 말,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는 말 따위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정말 듣고 싶지 않다.
그냥, 내 생각은 이렇다. 꼰대들은 똑똑하고 창의적으로 일 잘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꼰대들은 누군가의 능력과 노력을 공동체 전체를 위해 사용하고, 그 과정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더욱 성장시키는 선순환 과정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당장 내 눈 앞에서 살랑거리거나,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을 원하며 그런 환경이 주는 자기중심적인 안락함에 취해 공동체를 망친다. 그런 태도는 다양성 차원에서 존중할게 아니라 하수구에 처박아야, 아니, 마리아나 해구에 파묻어 버리고 두 번 다시 꺼내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