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쉽게 말하는 희망, 쉬운 희망

2019. 4.15 (페이스북)

by 김현희

나는 나도 모르게 어딜 가든 균형을 맞추려는 습관이 있다. 모임을 가면 균등하게 발언 기회가 가도록 신경을 쓰고, 화제가 한 쪽으로 쏠리면 정리해 슬쩍 다음 주제로 넘긴다. 사람들이 내게 ‘만나보니 의외로 조용하네요’ 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균형을 맞추려다 보니 나만 말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그렇다.



페북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내 관점에서) 이 바닥이 굉장히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가 19대 대선 직전이라 그랬을 수도 있는데,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심하게 공격받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페북에 계신 선생님들이 굉장히 힘들어 보였다. 교사라는 직업이 당연히 힘들고 나름의 고충이 있지만 타 직종에 비해 복지수준이 높고, 여가 시간도 많은 편인데 페북에서만 보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들은 각자의 고충을 이곳에 털고 지나갈 뿐인데 남은 흔적들을 보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어디에서든 균형을 잡으려는 내 태생적 습관은 또 발동이 걸렸다. 학부모와 교사가 너무 대립구도로 가는 것 같으니 내가 겪었던 좋은 학부모들 이야기를 한다. 전교조가 미친 듯이 까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자 굳이 전교조 얘기를 한다. 세상에 훌륭한 교육 사례만 넘치는 것 같으니 망실대회를 연다. 나는 본능처럼 그렇게 움직인다. 둘째로 태어나 그런가?



나는 종종 페북에 학생들과 있었던 좋은 일에 대해 쓴다. 누군가는 내가 아이들에 관해 낭만적이라 평할 수 있고, 쉽게 희망을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모든 글이란 구성된 현실이다. 실제 생활을 돌이켜보면 좋은 일만 있을 리 없다. 오늘도 난 12살 망아지들과 5시간 연속으로 체육 수업을 하고 현기증이 났다. 학생들이 너무 심란을 떨어 꽥꽥얍얍 고함도 쳤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파김치가 되서 멍하니 창문을 내다본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초등에서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을 맡고 싶다는 게 욕심이고 사치인가. 찌질하게 홀로 신세 한탄도 한다. 그리고 쌓인 공문을 처리하고, 의욕도 없는 사업계획서 기안을 올리고, 학교를 나선다.



‘희망’은 원래 힘들다. 학교에서 기계처럼 소모된다는 느낌을 지우려고 어떻게든 희망을 찾고, 생각할 거리를 끄집어낸다. 멋진 동료들이 있어 다행이고, 적어도 내가 어렸을 때보다 나아진 학교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 보면서 위안 삼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매일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언제까지 선생님을 할 수 있을까. 매일 이런 생각을 하는 나 같은게 선생 맞나.



쉽게 말하는 희망은 있어도, 쉬운 희망은 없다. 모두 각자의 지옥을 품고 살고, 괴로우니까 희망을 말한다.



(누군가의 글을 보고 내가 너무 쉽게 희망적인가 고민하다, 두서없이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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