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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Mar 08. 2021

먹고, 회상하고, 주식하라

요즘 대중매체

미디어 속 대중문화가 현실의 반영인지, 현실의 과장인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분명 최근 몇 년 간 '꼰대'니 '90년대생'이 어쩌니 하며 한국 사회의 수직적 문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져왔다고 생각했는데 티브이를 켜면 혼란스럽다. 아까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을 스치듯 보다가 나는 어떤 만화가가 싫어지고 말았다. 본인보다 나이 어린 자에게 다짜고짜 명령조, 말끝마다 '형이 해줄게', '오빠만 믿어', 그렇게 무례하고 꼰대스러울 수가 없다. 하지만 출연진들 대사나 제작진이 만든 자막과 설정은 그냥 '다정하게 챙기는 형', '저럴 때는 동생이 형 말을 들어야지' 정도다. 도대체 내가 2021년, 소위 트렌드를 이끄는 2-30대를 보고 있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90년대 음악을 소개하는 차트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갑자기 어떤 건장한 남성분이 여자 분장을 과하게 하고 나와 걸그룹 춤을 추었다. 그러자 진행자인 김희철 씨가 춤추는 남성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고, 자막에도 '때려주고 싶다'는 식의 멘트가 나왔다. 웃자는 설정인 듯했는데 내 눈에는 명백한 트랜스젠더 비하였다. 또 얼마 전 어떤 시사프로그램에서 한 방송인이 게이 혐오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았다. 나는 저건 분명한 방송 사고다, 사과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다음날 아침 일부러 기사까지 검색해봤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TV가 아닌 내 주위를 봤을 때, 여전히 꼰대스러운 사람들은 득실거리지만 소수자 혐오발언을 직접적으로 하는 사람까지는 거의 없다(내 주위래봤자 아주 협소하긴 하다). 그렇다고 소수 문화에 대해 속 시원하고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인정하는 풍토도 아니다. 한 번은 내가  "우리나라에는 커밍아웃하는 사람들 숫자가 이상할 정도로 적다. 특히 연예인 중 어떤 사람들은 누가 봐도 게이가 분명한데 끝까지 커밍아웃을 안 한다. 그게 다 사회 문화 영향"이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연예인 이야기를 하며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져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혐오발언을 하는 것보다는 진일보한 형태이나, 소수자들을 '방안의 코끼리'처럼 대하는 것도 갈 길이 멀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변희수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건 군대만이 아니다. 


요즘 대중문화를 보면 사람들은 온통 먹고, 추억에 빠지고, 주식만 한다. 그것들이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행위가 아니고, 축약되고 과장된 현실인 줄은 안다. 대중매체가 높은 시민 의식을 추동하길 바라는 것도 지나친 욕심과 기대일 거다. 하지만 사람들이 먹고, 추억에 젖고, 주식만 했을 때 기뻐할 계급은 뻔하다. 나로서도 종족에 대한 회의가 짙어지는 건 힘든 일이라 결국 조용히 티브이를 꺼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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