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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May 01. 2021

5월이 되면


요즘 '내가 왜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나'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리더나 스피커 역할이 즐겁거나,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아는 느낌이 좋거나, 영향력을 떨치며 보람을 느끼거나, 사명감에 불타는 성격이 아니다. 경험 속에서 이에 대한 확신은 더 강해졌다.  


현 상황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봤다. 07년도에 별생각 없이 교사가 되었지만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나서 '어라? 나 의외로 교사가 잘 맞는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믿거나 말거나, 그때만 해도 나는 환경에 적응하고 싶었다. 동료 교사와 관리자들을 비롯한 제반 환경을 신뢰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배우고 싶었다. 정년 퇴임을 하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시간이 흐르며 대부분의 바람과 기대가 차곡차곡 무너져 내렸다. 10년 차 되던 어느 날 극강의 환멸에 젖어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딴지일보 독자게시판에 글 한편을 던져버렸다. 그때부터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태로 달려온 것 같다. 엉겁결에 책이 나오고, 홍보 차 페북에 가입하고, 갑작스레 대회를 열고, 조직까지 꾸렸는데 어떤 것도 내가 의도했거나 미리 계획한 바가 없었다. 애초 내가 속한 조직들(학교, 교육부, 교원노조 등)이 내 기준에 맞게 굴러가고 있었다면, 혹은 최소한 그런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나는 여전히 조용히 학교 다니고, 문화 예술을 즐기며 유유자적 살고 있었을 거다.   


최근 뇌 연구자가 쓴 책에서 이런 글귀를 읽었다. 


“존엄한 사람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는 섣불리 나서지 않고, 주의 깊고 신중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언가가 자신의 존엄함을 해치려고 위협하는 상황에서만 모습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오히려 매일같이 온갖 일에 일일이 관여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존엄하지 않다고 여기며, 조용히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존엄함에 상처를 입지 않는 한 평온함을 유지하기 때문에,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동하는 이들이 대신 기준을 세우고 이익을 실현하도록 내버려 두게 되는 것이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 게랄드 휘터)


누구든 이게 자기 얘기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도 그렇다. 나도 도저히 못 참겠다는 지경이 되지 않았다면 공개적인 장소에 글을 쓰지 않았을 거다. 나야말로 온갖 일에 관여하는 게 질색이고,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과 평온한 일상이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게랄드 휘터는 이제는 그런 사람들일수록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데...쉽지는 않을 것 같다.  


5월 말이 되면 페북분회 분회장 임기가 끝난다. 뭐 지금도 심각하게 번잡한 상황은 아니지만 내 일상은 확실히 더 평온해질 거다. 나는 내 모습을 드러내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내가 맡은 자리에서 조용히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5월에는 내가 원하는 인생의 모습이 좀 더 명확해지면 좋겠다.


(2021.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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