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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May 01. 2021

여성에게 총만 쥐어 준다고

영화 ‘낙원의 밤’을 봤다. 전반적으로 별로인데 여성관이 특히 별로다. 박훈정 감독은 영화 'VIP'의 여성혐오 논란을 의식해 '마녀'를 썼고, '낙원의 밤'에도 여성 주인공의 액션씬이 전면에 등장한다. 사실 'VIP'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라 분석 자체가 불가능했다. '낙원의 밤'에 총을 든 강인한 여성이 등장한다며 호평하는 분들도 있더라만 나는 곱게 보이질 않는다. 


얼핏 보면 여주인공이 시니컬하고 고독한 독립적 캐릭터다. 그런데 멀쩡해 보임에도 맥락도 없이 불치병에 걸려있고((쓰러지자 당연히 남성이 업고 뜀)), 중요한 순간에 이성을 잃고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며((남성은 말리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림)), 남성에게 무례하기 그지없는 언행을 내뱉고((남성은 점잖게 인내함)), 난데없이 남성의 뺨을 때린다((남성 주인공은 싸움을 겁나 잘하지만 노려보기만 함)). 상투적인 건 둘째치고 '여자는 약해서 때릴 수 없다', '오빠니까 참는다' 같은 저변 정서가 거슬린다. 여성을 응석받이, 통제불능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귀여운 아이'쯤으로 보는 것 같아서다. 


매너는 '사람'을 만든다. 남성이 했을 때 폭력적이고 무례한 언행은 여성이 해도 마찬가지이며, 약하고 귀여워 봐준다는 태도는 오히려 모욕에 가깝다. 세계관은 그대로 두고, 여성 손에 총만 쥐어준 채 주체성과 능동성을 가진 강인한 여성상을 그렸다고 자신하는 건 너무 안일하지 않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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