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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May 01. 2021

인정할 때도 됐다


과거 뜻깊은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종국에는 조용히 교육에만 매진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교육으로 사회를 바꾸겠다는 현실적 판단도 있었겠지만, 아마 정서적으로 희망을 찾을 길도 교육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요즘 세상 모습을 보다 지쳐, 다 망해버려라, 싶다가도 아이들에게서는 희망을 본다. 물론 그들도 잔인할 때가 있고 우상화는 위험하지만 확실히 어린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밝고, 유연한 존재들이다. 


교사노조연맹의 한국노총 가맹 임박 소식을 들었다. 순간 뿜은 건 사실인데, 나랑 상관이 없다고 느껴져서인지 될 대로 돼라 싶다. 현재 추세와 조합원 수를 고려하면 교사노조연맹이 최대 교원노조가 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어버이, 애국, 엄마 같은 단어와 함께 내가 꺼려하는 단체명 어휘 중 하나가 '한국'인데 한국교총, 한국노총과 교사연맹...사이좋게, 명랑하게 사시길. 


'연대'가 그리 쉽다면 교사 집단이 백날 이 모양 일리가 없다. 개인적으로 한국교총을 야무지게 싫어한다. 오래전 일이야 눈으로 대충 훑은 정도지만, 교직에 들어온 이후 내가 직접 본 것만 해도 체벌금지 반대, 일제고사 반대 투쟁하다 징계받은 교사들에게 '자업자득' 발언, 국정 역사교과서 찬성, (내부형 공모 교장제 관련) 무자격 교장 논란, 소수자 혐오를 일삼는 극우단체들에게 숟가락 얹기 등. 40년 전으로 돌아가면 행복해할 것 같은 단체다. 그래도 교원단체인데 정책 연대는 가능한 거 아니냐는 의견에 원칙적으로야 동의하는데, 치밀한 계산 없이 좋은 게 좋은 거란 식의 연대는 싫은 걸 떠나 가능하지도 않다. '느슨한 연대'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었지만, 연대가 말처럼 쉽다면 한때 좋은 사이였던 실천교사와 교사연맹이 저렇게까지 충돌 할리도 없겠지.  


전문성은 고사하고, 시민으로서의 기본 품성에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역대 한국교총 회장들이 넥타이 매고, 정장 입고 '교원은 전문가!'라며 부르짖는 것도 우스웠는데. 교사도 노동자라며 조끼 입고, 머리띠 메고, 삭발하고 단식하는 것도 내 눈에는 강박이었다. 우리는 이미 노동자인데 뭘 그리 온몸으로 증명하려 애쓰는지. 교사는 말과 행동으로 노동하는 펜대 노동자다. 그게 뭐 어때서. 


아무튼 뭐, 그냥 이 정도가 내 눈에 보이는 한국 교원들의 상황이다. 최대 교원단체는 40년 전 세상에 살고. 강성 '노동자' 타이틀 부담스럽고, 다른 집단과 엮이기도 싫지만 이익은 챙기고 싶은 (그런 생각이 절대 잘못은 아님) 한국노총 산하 교원노조가 떠오르는 '신흥' 세력이다. 유일한 진보 성향 교원노조는 의제 설정도 못하고 매력도 없다. 단체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교사들의 단체 가입률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다른 거 없다. 교사들은 가입 안 해도 살만하기 때문이다. 인정할 때도 됐다. 교사들은 흔히 '교사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말을 하는데 교사의 목소리가 뭔지 정확히 알기에는 구심점이 터무니없이 약하다. 마음 둘 데가 없다. 


집 밖에 나오면 수업할 때가 제일 마음 편하다. 2주에 하루 정도 오늘처럼 수업 없는 날이 있는데, 신나게 책 읽고 수업 준비하다가 갑자기 멍해져서 이런 잡글이나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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