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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May 01. 2021

역량의 기본은 유연성,
유연성의 기본은 확고함

'제가 영어를 못하는데 영어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온, 오프라인에서 적어도 열 번 이상 받았다. 나는 주로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담 갖지 마세요. 초등 영어교사에게 그렇게까지 높은 수준의 영어능력은 필요 없으니 일단 시작하시면 됩니다."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이 부족하고, 질문하신 분의 막연한 불안이 느껴졌기 때문에 드린 답변일 뿐 사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초등 영어 수업이 높은 수준의 영어 능력을 요하지 않는 건 사실이다. 또 교사의 영어능력과 영어수업능력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즉 영어가 유창한 교사 A가 영어에 서툰 교사 B보다 수업 능력이 더 좋으리란 보장이 절대로 없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타인과 비교할 경우의 예시일 뿐이다. 기준을 자기 스스로에게 두면, 즉 영어가 서툴렀던 교사 K가 영어에(혹은 영어교육 자체에) 자신감이 생기면 교사 K는 교육과정 재구성 능력, 수업을 보는 관점, 자료 검색 및 활용 능력, 역량의 유연성 측면에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내가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초등 영어 수준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텍스트를 듣고, 읽는 이유 중 하나다. 


학생이 어릴수록 교사에게 낮은 수준의 지식이 요구된다는 관점은 교육에 관한 무지의 소치다. 중학교 교과서 내용만 알면 중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는 식의 이해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수업해 본 사람들은 안다. 제대로 수업하려면 교과의 내용과 구조뿐만 아니라 학생의 수준과 흥미, 발달과 상호작용, 방법론, 사회의 변화, 추구할 가치 등 고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고 공부하려 들면 끝이 없다. 초등 저학년, 고학년, 중, 고등학교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은 '형태'가 다르다. 하지만 교육자로서 갖춰야 할 지식과 능력의 '질과 깊이'는 다르지 않다. 


나는 교육자로서의 역량은 특화된 기능이나 분절된 지식보다 '유연성'에 있다고 본다. 이는 세넷의 관점이기도 한데 여기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어야 '역량'이라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초, 중등 교원자격이 현재와 같이 완벽하게 이분화되어 있을 필요도 없다는 게 내 입장이다. 내가 말하는 '유연화'의 확고한 전제는 첫째, 학생의 나이나 가르치는 과목을 막론해 교육자로서 갖춰야 할 지식의 질과 깊이에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고 둘째, 가르치는 사람은 학습자 수준을 막론해 끝없이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각론의 차이가 있더라도 질과 깊이에 차이가 없고, 또 어차피 교사에게 끝없는 재교육이 필요하다면 초등교사는 영원히 초등에만, 중등교사는 중등에만 영원히 머물러야 하는 현 체제의 필요성에 의문이 생긴다. 물론 정책 논의 단계로 진입하면 폭발하는 변수와 이해관계로 인해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교원자격 유연화를 말하는 모두가 교육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현재 교직 풍토가 이론을 무시하고 각론에만 방점을 찍기 때문에 초, 중등 교원의 역량도 지나치게 이분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론을 배척하는 풍토가 사회 전반은 물론이고 교직사회 내부에마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데 나는 '교사가 이론을 알아서 뭐하나', '이론은 현장에 쓸모가 없다'는 의견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최근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학교 6학년 학생들의 평가지를 채점하는데 꽤 많은 아이들이 English를 english라고 썼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 빨간 펜으로 E라고 고쳐줬지만 맞은 것으로 처리했다. 최근 국제어로서의 영어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차원에서 English를 복수형인 "englishes"로 표기하는 일부 흐름이 있다. 표준 영어에 대한 권위와 환상을 향한 학계와 현장의 문제의식도 세계적으로 높아진 추세다. 또 나는 '맞고 틀림'에 집착하는 언어교육의 유해성, 외국어 교육의 본질 왜곡 현상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평생 나와만 공부할 게 아니고 어쨌든 기본을 배우는 단계이므로 맞았다고 처리하되 고쳐준 거다. 아이들이 쓴 english라는 단어 하나를 놓고도 이런 고민을 가능하게 하는 게 '이론'이다.  물론 각론도 중요하다. 이론도 변한다. 하지만 각론은 언제나 이론보다 더 먼저 더 큰 폭과 더 빠른 속도로 변한다. 언제나 균형이 중요하지만 초등 임용시험 과목에서 교육학이 빠진 것만 봐도 현 교육계는 완전히 균형을 잃은 상태다.  



교육 현장에서 '유연화'를 주제로 대화가 시작되면 언제나 논의가 산으로 간다. 그래서 뒤죽박죽인 내 생각을 정리할 겸 두서없이 적어봤다. 그런데 쓰고 보니 이는 교육에만 적용되는 주제가 아니다. 실제 모든 종류의 유연함의 저변에는 일관성과 규칙성, 확고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유연함은 산만함, 난잡함일 뿐이다. 유연함이 전제되지 않은 규칙성과 일관성 역시 경직과 퇴행, 폐쇄성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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