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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May 01. 2021

현실은 복잡계

다른 지역 학교 상황을 듣다 보면 재밌다. 지역차, 제도 차이라는 게 분명 존재하지만 문화 차이, 구성원들 역량 차이에 따라 학교 모습이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대전은 보수적, 봉건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선진적이라고 알려진 서울이나 경기도도 학교마다 환경과 분위기가 다르고 어떤 학교들은 심지어 대전보다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다. 사실 교원은 국가직 공무원이고, 관리자 갑질이나 권위주의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들은 동일하게 잘 갖춰져 있다. 어느 지역에 있든 갑질 신고, 고충심사위원회 한방이면 웬만한 건 클리어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80년대에 살고 있는 학교들은 백 년 천 년 관리자 탓만 하지 말고, 구성원들의 시민적 역량부터 제고해야 한다. 또 학교에서 교사들이 해결할 수 있는 소소한 문화차원의 문제까지 매번 노동조합에 요구하거나, '이런 것도 안 고쳐주고 뭐하는거냐?' 식으로 말하는 건 도저히 좋게 볼 수가 없다. 징징거리며 험담만 하고 정작 실천은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뭐냐, 어린이냐?'싶을 때도 많았다(어린이들 미안합니다). 소소한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할 줄도 알아야 하고, 손 안 대고 코푸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한다. 교사든 학생이든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얼마 전 우리 지역 모 고등학교에서 교장이 온라인 스튜디오를 사적 용도로 유용한 사건이 벌어졌다. 작년에 교육청에서 40억 원의 예산을 200여 학교에 배분해, 온라인 스튜디오를 구축하도록 지원했는데, 그 학교 교장이 기사 자격증 온라인 강의 영상을 스튜디오에서 녹화했다고 한다. 일단 그 교장이 허튼짓 한건 맞고, 감사로 처리될 것 같던데 나는 뉴스 영상을 보면서 '저 온라인 스튜디오를 대체 왜 만든 거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우리 학교는 자체 수요 조사를 해서 그 돈으로 모든 교사들에게 웹캠, 마이크, 와콤, 반디캠을 사줬다. (방송실이 이미 있고, 교사들이 개별적으로 영상을 제작하니 온라인 스튜디오가 딱히 필요 없다고 판단). 또 교육청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온라인 오피스를 모든 교사와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래서 나는 작년에 학교는 물론이고 내 개인 노트북으로도 아주 편하게 영상을 제작했다. 종종 페북에서 장비 문제로 울부짖는 교사들을 볼 때마다 뜨악했었다. 선진적이라고 들었는데 저 동네들 왜 저러지, 싶었던 것. 그러나 반전은, 그 정도로 제반 여건이 좋았지만 자체적으로 영상을 제작하는 교사는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보수적 동네라고 마냥 후진 것도, 선진적이라 알려진 곳들이 마냥 앞서가는 것도 아니다. '진보-보수' 기준보다 더 중요한 건 소통할 줄 아는 똑똑하고 영민한 리더, 자율성 전문성 책임감을 조화롭게 갖춘 구성원들이다. 어떤 교사들과 단체들은 제도와 물리적 여건만 잘 갖춰지면 '교사들은 알아서 잘할 거다', '교사들을 내버려 둬라', '위기 상황에서 교사들만큼 열심히 한 집단도 없다'라고 외치던데, 그 선의는 인정한다만, 적어도 내가 보는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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