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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May 22. 2021

타인을 한 줄로 요약할 권리

조만간 페이스북 계정을 휴면으로 전환하거나 탈퇴할 생각이다. 마음먹은 지는 오래됐는데 분회 선거가 남아서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다. SNS가 인생의 낭비라는 주장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내 경우는 귀한 사람들을 얻었으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다만 여기에 계속 머무는 게 내 지적, 정서적 성장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SNS의 편향 강화 현상은 명백한 사실이다. 자주 숨이 막힌다. 동종 직업인들끼리 모여 있을 때의 에너지는 언제나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한국 교사 집단의 전반적 연대는 너무나 취약한 반면 페북 교사 집단은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페북 알고리즘의 탓도 있겠다. 맞잡은 손은 소중한 연대의 몸짓이지만 그 맞잡은 손들은 외집단에 배타적인 방어 의식과 편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연대하되 늘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지 않는다면 누구든 언제라도 맛이 갈 수 있다.  


페북에서는 강하고 거침없는 표현을 '자주, 세련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각광받는다. '강함'이 '진실과 깊이'를 담보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일부 유명 페부커들은 자기 자신은 세상 복잡한 사람인양 포장하면서 타인은 한 줄로 간단히도 요약한다. 우리 모두는 대개 선과 악의 경계 어딘가에 머무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람들이다. 또한 대개 자기 입장에서만큼은 선의를 갖고 움직인다. 당신과 다른 의견을 갖는 이들, 당신과 결이 다른 사람들을 오만하다고 멍청하다고 몰아세울 필요는 없다. 당신의 저작물이 소중한만큼 남의 결과물도 존중하며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남을 깎아내리고 훼손해야 자신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정상적인 공동체라면 오히려 반대이어야 하는데 이 곳 상황은 그렇지 않다. 종종 페북에서 어른들은 '못된 어린이 되기 경연대회'라도 여는 것 같다. 생산적인 비판과 인격 모독을 구분하지 못하겠다면 그냥 남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도 당신에게 타인을 한 줄로 요약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


페북에서 환멸을 느낄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얻어 다행이다. 예외는 있지만, 페북은 외강내유형들이 부상하기 쉬운 매체인데 내가 좋아하는 분들은 대개 외유내강형에 자기객관화를 잘하고 겸손한 분들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더라도 어른, 선배 대접 따위 원치도 않으신다. 페북을 나가더라도,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이들과 함께한 경험은 소중히 여길 생각이다.


커버이미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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