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국경 따위

로마에서. 2018. 7. 31. (페북)

by 김현희


나는 90년대에 십대 시절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유년기에 세계 명작 소설들을 읽고 홍콩, 헐리우드 영화 등을 보며 자랐다. 그 당시부터 일본 대중 문화가 음양으로 넘실대며 들어와 엑스저팬이나 기타노 다케시, 구로사와 아키라 등도 익숙하고. 하루키나 류와 같은 일본 작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10대 시절 하면 영국의 라디오 헤드, 오아시스, 미국의 너바나, 펄잼 같은 음악들이 빠질 수 없고. 또 그 와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던 작가는 중남미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2천년 대 초반에 봉준호랑 박찬욱 등이 본격적으로 날개달기 전까지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영화는 잘 보지도 않았다. 10대 때 내가 제일 싫어하던 영화는 한국판 헐리우드 영화라던 ‘쉬리’. / 분명히 국경이란 게 존재하고, 국가마다 문화는 상이하다. 문제는 그게 나에게는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그냥 좋으면 좋은거고, 구리면 구린 것. 누릴 수 있는 문화들이 눈 앞에 널려 있는데 한국 것이라서 딱히 애틋해 본 적 없다. 봉준호와 박찬욱이 자랑스럽고 황정민의 연기가 황홀하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이나 디카프리오가 딱히 더 멀리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뜻.


나는 짱깨, 쪽바리 같은 말이 싫고 외국인들에게 ‘외국놈’ 어쩌고 함부로 하는 말도 몹시 싫다. 외국인들이 우리 보고 한국놈들이라고 하면 좋나? 내 마음 속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석굴암은 그야말로 아아아아아무 상관이 없는데. 도대체 내가 미켈란젤로를 좋아하는 사실이 어떻게 ‘외국만 우수하다고 교육받은 까닭’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같은 국적 사람들 아니라고 이놈 저놈 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적어도 내 타임라인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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