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오늘은 기부를

로마, 2018. 7. 31

by 김현희


버스를 타는 중에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다. 하필 옆으로 매는 가방 지퍼가 고장이 났는데 어떤 남자가 내 가방에서 핸드폰을 집어서 슬며시 내리는 거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 격하게 소리를 질렀고 한 남성분과 할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핸드폰을 되찾았다. 소매치기 치고 뭔가 너무 어수룩했다. 하긴 고장난 지퍼 가방에 핸드폰 넣어두고 버스 타려던 내가 더 어수룩하지만. / 폰을 찾고 나서도 한동안 손이 떨리고 다리가 부들거렸다. 온갖 생각이 스쳤다. 말도 안통하는 나라에서 경찰서를 갈수도 없고, 가족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었을테니 정말 큰일날 뻔. 여차여차 테르미니 역에 도착하니 2층에 총 든 군인들과 경찰들이 보였다. 그들이 매우 고압적인 태도로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순간. 그 모습이 그렇게 안심될 수가 없었다.


내가 볼 때 경찰과 군인 관련해 많은 인간들은 3단계를 거친다. 1단계는 아장거리며, 삐뽀삐뽀 고마워요 멋진 경찰아저씨를 부르는 단계. 2단계는 짭새 꺼져, 뻑더폴리스(feat. N.W.A)단계인데 대개 십대 중 후반쯤 찾아온다. 3단계에 이르면(인정하고 싶든 말든) 국방과 치안의 필수불가결함을 절감할 수 밖에 없다. 나는 테르미니 역에서 나의 뻑더폴리스 단계가 완전히 끝났음을 깨달았다. 어쨌든 이탈리안 소매치기에게 폰을 되찾다니 정말 억세게 운이 좋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걸인에게 돈을 조금 주고 기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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