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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ul 20. 2021

형형한 똘끼와 선한 영향력

Oasis - Live Forever

'선한 영향력'이란 말이 요즘 매우 싼 값에 소비되는 느낌이다. 이 말의 정확한 기원은 모르겠는데 종교, 자기 계발 분야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물론 언론 매체를 통해 접했다. "연예인 ○ 기부 선행 - 선한 영향력! /  선한 영향력 전파! 래퍼 ○ 재능 기부!" 이런 식이다.


연예인의 이미지와 경력, 수익 창출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이미지 개선과 홍보의 대상이 되는 선행이 마냥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사실이다(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연예인들은 착한 일 하기도 힘들겠다). 물론 계획되고 의도된 선행이라고 해서 비난받을 필요는 없다. 허세이든 가식이든 내면의 선의와 긍정적인 결과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내가 저런 표현들이 거슬리는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연예인들에게 유난히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정치인들은 범법 행위를 저질러도 불사조처럼 돌아오는데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걸핏하면 도마에 올라 윤리적 잣대로 재단당한다. 대중이 요구하는 연예인들의 품행과 사회적 책임은 가히 성직자 수준이다. 아이돌의 연애와 사생활 통제, 툭하면 벌어지는 인성 논란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연예인들의 '선함', '선한 영향력' 내지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행 등에서 사회적 압력 내지 강박의 냄새를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인간이 착하고, 겸손하고, 선행을 베푸는 건 기본적으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배우나 뮤지션들에게 일반인 이상의 의무와 책임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내가 10  즐겨 들었던 밴드  하나는 '오아시스'. 빵빵한 기타 사운드와 단순한 멜로디, 낙관적인 가사가 특징으로 90년대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슈퍼밴드이다. 그들의 사생활과 언행은 어떤 시공간의 기준으로 봐도 엉망진창이었다. 공식 석상에서 욕설과 막말은 기본이고, 호텔 기물 파손으로 인한 출입 금지 일화 등은 유명하다(다큐멘터리'슈퍼소닉' 보니 '그때 나도 내가  그렇게 땀을 흘려가며 호텔방을 부수었는지 이해가  간다'라고 하더라). 그들은 재능과 패기가 넘쳤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악동이었고 건방지고, 오만하다는 비난을 달고 살았다. 무대에서도 '들을 테면 들어라' 태도로 공연했다. 자신들을 활용해 배를 불리는 언론을 조롱하며 “너희가 뭐라 지껄이든 우리의 음악은 영원히 레코드샵에 있을 ."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밴드의 주축이었던 갤러거 형제는 평탄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들의 아버지는 가정 폭력을 일삼았고, 참다 못한 어머니가 세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훗날 오아시스가 큰 성공을 거두자 생부는 금전적 이익을 위해 언론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어릴 때 노엘은 아버지의 거듭된 폭행 때문에 언어 치료를 받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한 인터뷰에서 노엘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것이 절대 내 음악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어. 난 인생이란 멋진 것이라 생각해.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떤 멋진 일이 생길까 하며 즐겁게 일어나지. 아침에 눈뜰 때 기분 나빴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생부가 휘두른 주먹에 맞아 길거리에서 기절하기도 했던 노엘 갤러거는 자신이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나는 걸 보고 인생의 낙관을 배웠다.
그 맨체스터 출신의 뮤지션이 세상에 내놓은 곡이 바로 'Live Forever'였다"
- <오아시스를 만날 시간> 전리오, 시공사


노엘과 리암은 'Live Forever'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는다. 내게도 여러 추억이 얽힌 특별한 음악이고,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Live forever는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남게 될 거다.   


나는 사람들이 '선함'과 '영향'을 하나의 틀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난한 노동자 계층 출신의 막돼먹은 갤러거 형제는 슈퍼밴드를 탄생시켰다. 내가 10대였던 90년대에 나는 오아시스를 비롯한 지구 반대편 망나니들의 음악을 듣고, 그들의 난동을 지켜보며 자랐지만 그렇다고 안하무인의 괴물이 되지는 않았다. 인간이 성장 과정에서 받는 영향은 예측하기 어렵고, 그 '영향'이란 것이 일방향적인 것도 아니다.


오아시스는 뮤지션답게 음악으로 존재했고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오아시스로부터 받은 영향을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뮤지션은 주크박스가 아니다. 인간은 자판기가 아니다. 누구든 고난을 겪고 슬픔과 상처를 품고 산다. 커트 코베인처럼 흐느끼다가 산화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고, 오아시스처럼 배째라며 막 나가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정답은 없다. 그래도 가면을 쓰고 앵무새나 퍼펫처럼 살아가는 것보다는 찌질할지언정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게 낫다. 그렇다면 우리는 최소한 '살아있을 수'는 있으니까. Live Forever! 나는 10대 시절에 오아시스를 만난 걸 언제나 행운이라고 생각해왔다. 누가 뭐래도 오아시스가 내게 남긴 영향은 선. 하. 다.


2학기 때는 교실에서 애들이랑 'Wonderwall'이나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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