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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ul 30. 2021

서로의 성장 영화를 찍는다

2018년 1월 27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

습관처럼 난 머릿속에서 항상 누군가들의 성장 영화를 찍는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성장은 물론이고 내가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배우, 작가, 감독들과 ‘함께 자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너무 소중하다.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는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을 찍기 전,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 1993)에서 정신지체를 가진 어니Arnie를,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 1995)에서 프랑스 천재시인 랭보Arthur Rimbaud를 연기했다. 중1이었던 나는 특히 랭보 역할의 디카프리오에게 홀딱 빠졌었다. 언젠가 영어에 유창해져서 그와 대화하고 말겠다는 다부진 결심도 했었고. 그는 더 이상 보송보송한 연기 신동이 아닌, 배 나오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는 중년 남성이자 완벽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 대배우가 되었다. 그래도 내 마음 한 켠에서 그는 여전히 ‘취한 배’,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쓴 젊은 반항아 랭보다. 


배우 크리스천 베일Christian Bale은 영화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 2008)의 브루스 웨인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보다 10년 전, 그는 영화 ‘벨벳 골드마인’(Velvet Goldmine, 1998)에서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하는 소년을 연기했다. 당시 나는 그가 아닌 다른 두 주연배우(조나단 라이 메이어스, 이안 맥그리거)를 좋아했다. 크리스천 베일은 참으로 촌스럽게 생겼다는 생각도 했었고. 몇 년 후 그는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 2000)를 찍더니 2008년 급기야 브루스 웨인이 되었다. 촌뜨기 청년을 각인한 내겐 참 어색했지만 기분 좋은 웃음이 나왔다. 영화 ‘벨벳 골드마인’은 감독도 내게 특별하다. 90년대 전위적이고, 자의식에 가득한 퀴어영화를 찍던 토드 헤인즈Todd Haynes는 이제 우아하고 아름다운 영화 '캐롤'(Carol, 2015)의 감독이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리고 그들은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지만, 마음으로 늘 응원을 보낸다.   


가끔 페북 속의 나도 자란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이곳에서 터를 잡아온 분들도 나와 ‘함께 자란다’ 혹은 ‘저 사람을 키우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으시려나 궁금할 때가 있다. 마치 서로가 서로의 성장영화를 찍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런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면 페북은 더 근사한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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