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2018. 8. 2
어린 시절 ‘개구리 왕눈이’ 와 함께 내게 너무도 큰 슬픔과 번뇌를 안겨준 어린이 만화는 단연 ‘플란다스의 개’였다. 네로의 마을 사람들은 네로에게 왜 그리도 매정했는가.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내 또래 어린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극적인 결말이 아니었나....피렌체 우피치 박물관 3층을 걸을 때 문득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왜, 지금, 느닷없이, ‘플란다스의 개’ 생각이 나지...라고 생각하며 왼쪽으로 몸을 틀자 ‘더 니오베 룸’이라는 방이 보였다. 들어가 보니 벽에 엄청나게 큰, 가로 세로 20미터는 되어 보이는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바람으로 그린 것 같기도 했다. 완전히 반해서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누구 그림인지 확인하려 해도 화가 이름이 나와있지 않았다. 방을 나와 한참 안내 표지판을 읽었다. 니오베 방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한 긴 설명 사이로 다음 문장이 보였다. “...four monumental canvases by Rubens...”
루벤스였다. 네로가 사랑했던 루벤스. 성화는 아니지만 분명히 그 루벤스의 그림이었다. 네로는 그렇게도 보고 싶어했던 루벤스의 성화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마리아님, 저는 이제 아무것도 바랄게 없어요...” 라고 말했었다. 아...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마치 그림의 신들이 나를 에워싸고 조각난 퍼즐을 맞춰주고 있는 것 같았다. 박물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나와서 일본식 라면을 먹었다. 종일 엄청난 작품들을 보았는데 유독 루벤스의 그림과 플란다스의 개 이야기가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플란다스의 개’를 좋아해서 늘 우리와 함께 티비 만화를 보곤 했다. 나는 그 때 할머니가 어린이 만화 중에서도 ‘플란다스의 개’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가 혹시 네로의 할아버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라면을 먹는데 갑자기 목이 조금 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