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거리의 화가: 자포자기와 분에 넘치는 야망 사이

피렌체, 2018. 8. 4.

by 김현희

시스티나 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더 씰링(천지창조)’을, 피렌체 아카데미아에서 ‘다비드’ 조각상을 보고 나면 다소 부작용이 발생한다. 그 시점 이후로 보는 모든 천장화와 조각이 조금씩 게으르고 볼품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 다비드는 웅장한 존재감과 사람이 만든 게 맞나 싶을만큼의 섬세함이 공존하며 뿜어내는 아우라가 정말 대단했다. 그러나 아카데미아 박물관에는 그 외에 별로 볼 게 없는 느낌이었다. 돈을 좀 들여서 뭘 더 들여놓지 그랬니 싶다가도 문득 이해가 된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옆에는 무엇을 세워놔도 오징어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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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나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거리의 화가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은 있으나 기회나 운, 재능이 충분치 않아 죽는 날까지 거리의 화가로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미켈란젤로나 다빈치의 담대함과 고집을 눈 앞에 두고, 평생 그렇고 그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인생을 나는 견딜 수 있을까?...모르겠다. 물론 누군가는 ‘단 한사람을 위한 소박한 예술의 위대함’을 말할 것이고 나는 그런 소박함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모든 예술의 가치는 상대적’이라는 말을 너무 편리하게 해석해 버리는 편의 인간은 아니다.


가끔 나는 지식의 세계에 참여해 나의 흔적을 참신하게 남기고 싶은 욕망과 편안히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고 싶은 욕망의 충돌을 느낀다. 정말로, 소박한 무명의 교사로 사는 삶은 나쁘지 않다. 지금껏 내 인생도 그래왔고 나는 그런 삶의 미덕을 안다. 그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차피 나처럼 ‘자포자기’와 ‘분에 넘치는 야망’ 사이 어딘가를 헤매이고 있겠지. 그러고 보니 거리의 화가들을 괜스레 짠하게 바라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더워서 기차를 네 시간쯤 타고 북쪽으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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