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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Aug 01. 2021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

그곳에 없는 나의 선생님

 딜런(Bob Dylan) 좀처럼 나와 가까워지지 않았다. 포크록의 영도자,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뮤지션이란 명성에만 익숙했지 나와 동떨어진 시대의 인물이란 거리감이 있었다. 나는 90년대에 영국 , 그런지 록을 들으며 자랐다. 한때 젊음의 상징이었다는 포크음악, 청바지, 통기타가  눈에는 촌스러웠다. 건전 가요를 부르는 안경  착한 대학생들의 이미지가 겹쳐 보이기도 했다.   딜런의 위대함은 많은 부분 가사에 담겨 있다고 하는데, 각잡고 탐구하지 않는 이상 한국인인 내가 가사의 아름다움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 딜런의 존재감은 확고했다. 내게 익숙한 뮤지션들이 부른 그의 커버곡들이 워낙 많았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 오랜 기간 동안 'Knockin' on heaven's door'가 '건즈 앤 로지즈'의 곡인 줄 알았었다. 또 All along the watchtower, Like a rolling stone, Just like a woman, Ballad of a Thin Man 등을 펄잼, 데이브 매튜스 밴드, 제프 버클리, 엘리엇 스미스 등을 통해 알게 되었다가 나중에 원곡이 밥 딜런의 것인 걸 알고 깜짝 놀라곤 했다. 한 다리를 건너고 한 골목만 돌면 밥 딜런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원곡을 들어보면 커버곡들이 나는 더 좋으니, 밥 딜런이란 사람은 내게 늘 미스터리였다.


영원히 멀게만 느껴지던 밥 딜런을 내게 소개해준 건 토드 헤인즈(Todd Haynes) 감독의 영화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 2007)이다. 나는 10대 시절 같은 감독의 영화 벨벳 골드마인(Velvet Goldmine, 1998)을 통해 글램록에 입문했고, 데이비드 보위나 이기 팝 등에게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갖게 됐다. 글램록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었던 70년대에 빠르게 명멸했지만, 영화가 내게 끼친 영향은 꽤나 심대해서 나는 이후 토드 헤인즈 감독을 선생님이자 친구로 가슴에 담아두었다. 어릴 때 '벨벳 골드마인'에 매료되고 시선이 넓어졌다면, '아임 낫 데어' 덕분에 그를 향한 내 신뢰와 우정은 깊어졌다.

  

영화 'I'm not there'는 밥 딜런의 인생을 다루지만 일반적인 전기 영화가 아니다. 6명의 배우가 7가지 모습의 밥 딜런을 연기한다. 순차적인 일대기 형식도 아니다. 다채로운 모습의 밥 딜런을 콜라주 형식으로 구성해 나간다. 이 영화에서 밥 딜런은 백인 남자이자 흑인 소년이고, 시인 랭보이자 영화배우 로비이고, 록스타, 목사, 서부의 총잡이다. 그 모든 자아와 이미지가 밥 딜런이면서 밥 딜런이 아니다. 아무리 영화를 다시 보아도 밥 딜런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다 결국 '그에 대해 안다는 게 무슨 의미이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스스로 나아가게 된다. 실제로 밥 딜런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었다.  


“It’s ludicrous, humorous and sad that such people have spent so much of their time thinking about who? Me? Get a life please.... You’re wasting you own.”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한답시고 시간을 낭비하는 건 터무니없이 우습고 슬픈 일이다...)
“If I told you what our music is really about, we’d probably all get arrested,”Dylan once said.
(출처: 뉴욕타임스 https://www.nytimes.com/2007/10/07/magazine/07Haynes.html)

 

내게 가장 이상적인 친구란 이상적인 선생님의 모습과도 같다. 그들은 명쾌한 답을 내려주거나, 세상의 이치와 원리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친구와 선생님은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세계로 나를 다정히 이끌면서도 여백을 남기는 사람이다. 나는 토드 헤인즈 덕분에 밥 딜런이라는 바다에 입문했고 여전히 밥 딜런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자장과 파동은 느끼게 된 것 같다. 밥 딜런 음악의 바다에서 태어나 수십 년을 살아온 작은 멸치가 이제야 '아, 내가 사는 이곳이 바다였구나'라고 깨닫게 된 듯한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7명의 밥 딜런 중, 정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병상을 지키며 노래하던 흑인 소년 밥 딜런이 유독 마음에 남는다. 우디 거스리는 초기 포크 뮤직에 '저항 정신'을 새긴 뮤지션이었고 밥 딜런은 그의 '자처한'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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