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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Aug 27. 2021

왜 머저리들은 감투를 좋아할까

왜 머저리들은 감투를 좋아할까. 요즘 ‘왜 햄버거 하나로는 배가 차지 않을까’와 함께 나를 가장 괴롭히는 질문 중 하나다. 왜 멀쩡한 사람들은 외부로 나서지 않고, 머저리들은 리더가 되고 싶어 할까. 광범위한 사회 현상이라 인류학적 고찰이 필요하지만, 내 직업이 교사이기 때문인지 일단 교사 집단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해 보인다.


승진을 욕망하는 자들 중에 머저리들이 많다. 보통의 시민의식을 갖춘 교사들 사이에는 이미 교사 승진제도의 조악함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교육역량과 상관없는 기준으로 점수 쌓기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 과정이야 어쨌든 승진 후에라도 공익을 위해 노력해주면 좋겠는데, 일단 자리를 꿰차고 나면 열정은 눈 녹듯 사라지는 모양이다. 학교에 사건이 터지면 연가나 병가를 쓰고 도망치는 관리자들도 부지기수다. 완벽한 개선안이 있는 건 아니다. 교육능력이 뛰어난 교사들이 학교의 리더가 된다 해도 큰 변화가 있을지 미지수다. 수업능력, 생활지도능력, 동료들 사이의 신망이 학교 전체 운영에 필요한 리더십으로 환원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 맥락에서 승진제도 개선을 위해 다각도의 고민이 필요한 것 맞는데, 이와 별개로 현 교사 승진 체제가 머저리들의 천국을 만드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교육계에 '감투'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이들은 교원단체나 노동조합의 감투를 좋아하고, 강의나 출판 같은 외부활동으로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는 부류도 있다. 사실 내 경우는 책을 쓰고 학교 밖으로 나오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 이런 무리들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이들의 머저리력은 주로 '유명해지고 싶다', '월급 외에 부수입을 올리고 싶다'는 욕망이 동력으로 작용한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이니 인정해줘야지 싶다가도 '수업 아이템 과대 포장하기', '내집단의 공포와 불안, 이기심 자극하기', '유명인과 찍은 사진 SNS에 올리기' 정도를 교육 전문성이나 선한 영향력이랍시고 착각하는 모습을 보면 환멸이 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들은 부르면 어디든 간다. 자신을 대상화, 상품화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그래서 타인도 같은 방식으로 대한다. 이들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 존중'하는 것과 '이용'하는 행위 사이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승진파 머저리들이 고개 박고 자기 굴만 파는 '터널 비전형 머저리'라면, 두 번째 머저리들은 '발 없는 새' 유형이다(물론 장국영과는 네버에버 상관이 없다). 이들은 어딘가 늘 붕 떠 있어서, 육지에 도착해 현실과 자신을 직시하는 순간 사회적 생명력을 다할 것처럼 보인다. 교직사회에 여러 교원단체와 노동조합들이 있는데 내 괴팍한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세 가지 정도인 것 같다. 승진파 머저리들이 주로 가입하는 단체, 신념형 머저리들이 리더를 맡는 단체, 관종형 머저리들이 요직을 맡는 단체들이다.     


어쨌든 멀쩡한 사람들은 조용히 살고 싶어 하고, 머저리들이 감투 쓰기 좋아하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지구적 현상이다.

“존엄한 사람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는 섣불리 나서지 않고, 주의 깊고 신중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언가가 자신의 존엄함을 해치려고 위협하는 상황에서만 모습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오히려 매일같이 온갖 일에 일일이 관여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존엄하지 않다고 여기며, 조용히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존엄함에 상처를 입지 않는 한 평온함을 유지하기 때문에,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동하는 이들이 대신 기준을 세우고 이익을 실현하도록 내버려 두게 되는 것이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 게랄드 휘터)     

멀쩡한 사람들이 나서려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자신의 일상, 사랑하는 소수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또 공익에 헌신하려는 의지와 열정은 있지만 감투를 제대로 쓴다는 게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리더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드러나지 않는 물 밑에서 계속 발장구를 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쉽게 다가서지 않는다. 멀쩡한 이들이 감투를 꺼리는 이유를 머저리들은 인식조차 못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게랄드 휘터의 말처럼 악순환이 지속된다.   


내 인생이나 즐기자 싶다가도, 정신없는 자들이 리더랍시고 나돌다가 사고나 저지르는 모습을 보면 걱정은 된다. 교직사회 밖에서는 저들을 보며 교사 집단을 어떻게 판단할까, 학교 안과 밖의 온도 차이는 심해지는데 교육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대화, 합의, 조율은 어떻게 이룰까 싶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세상은 잘만 돌아가는데 괜한 걱정이나 하는 나야말로 머저리 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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