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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Sep 02. 2021

권위

백업

<권위> - 2021.08.30.


학급운영과 교육활동을 굉장히 잘하시는 선생님이 계시다. 주위에서 '학급운영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고 자주 물어보는데 딱히 생각나는 것도, 할 말도 없으셔서 이렇게만 말씀하신다고 한다. 


"그냥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일찍 와요." 


꼰대처럼 들렸을까 봐 걱정된다고 하셨지만, 나는 그 말에 너무 동의하고 공감했다. 나도 담임이었을 때 항상 교실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7시 반에 등교하는 꾸러기가 한 명 있었어서 가끔 2등을 할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일찍 간 건 아니었다. 늘 할 일이 많고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무심결에 생긴 작은 습관이 교실에서 큰 역할을 했다. 공공생활을 위한 규칙을 협의해 만들고, 따르도록 하는 내 모든 언행에 권위가 실리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에게 나는 항상 '가장 먼저 교실에 와서 안부를 묻는 선생님, 우리보다 먼저 와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교사가 권위주의적이어선 안되지만, 권위는 필요하다. 그 권위를 '학교에 가장 일찍 오기' 정도로 단순화, 획일화시킬 필요는 물론 없다. 교사가 권위를 갖추는 방법은 지식이나 기능, 인품일 수도 있고 혹은 모든 상황에서 학생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기본 태도에서 우러나올 수도 있겠다. 권위의 형태는 다양하다. 


예전에 어떤 선생님이 내가 갖고 있는 '권위'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나는 글 쓰는 사람 중에 상대적으로 젊고, 성품이 밝고, 창조적인 똘끼가 있다며 그게 바로 내 권위라고 하셨다. 그때만 해도 나는 권위 있는 글을 쓰려면 지금보다 공부도 많이 하고, 글에 자료도 많이 때려 넣고, 박사학위도 필요한가라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분은 꼭 무거운 글이나 애늙은이 같은 글을 써야 권위가 생기는 게 아니라며, 내게는 나만의 권위가 있다고 하셨다. 그 시점에서 그 조언이 참 도움이 됐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만의 권위, 나만의 품위를 지키고 싶다. 누군가 내 인격을 재단하고, 내 글의 일부를 확대해석해 조롱하고, 심지어 내가 글을 쓰는 동기까지 폄훼해도 나는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겠다. 그게 내가 내 권위이자 품위를 지키고, 나를 아껴주는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는 길이다.


<차단> - 2021.08.29.


내가 벌써 오래전에 그 분과 페친 관계를 끊은 이유는 여러가지이자, 단 하나다. 나는 그 누구와도 비민주적인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특히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즉각 '적과 친구'로 나누는 행위가 비민주적인 건 차치하고, 죄송하지만, 유치했다. 특정 게시물에 '좋아요' 하나 눌렀다고 페친을 끊네 마네 겁박하는 언행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들이 온라인 권력 남용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다. 나보다 교직 경력이 많고, 책을 많이 썼고, 팔로워가 많든 말든 그딴 것들 상관없었다. 수평적인 소통을 중시하고, 타인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는 건 내 원칙의 기본 중 기본이다.  


페절이 '차단'으로 이어진 건 오늘 일이다. 이전에도 그분은 내 탐라에 들어오셨었고, 내 글을 공유하신 다른 분의 타임라인에 내 글에 대한 (좋지 않은) 의견들을 남기기도 했었다. 오늘도 내가 쓴 원문과 다른 결의 의견을 댓글로 쓰신 분에게 '좋아요'를 눌러서 내 눈에 보이는 흔적을 남기셨다. 기분이 싸해서 그분 탐라에 들어가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나에 대한 비난이 쓰여 있었다(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내 실명이 적시된 게 아닌 이상 '정황'에 불과하므로 반박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페친이 아닌데도 내 의사에 반해 계속되는 기묘한 상호작용, 반복적인 인격비난이 상호 이득될 것 없이 지긋지긋하단 생각만 들었다. 결국 나는 '차단' 버튼을 눌렀다.


방금 나와 가까운 선생님들이 그 분이 타임라인에 내가 본인을 차단했다는 말을 쓰셨다는 걸 전해주셨다. 평소 페절과 차단을 많이 하시는 분이니 타인의 차단도 의연하게 받아들이시면 좋을 것 같은데 아쉽다. 


개인적으로 궁금하긴 하다. 교사가 ‘교사 집단만 빼고’, 오직 외부 집단만 사납게 욕해야 한다는 기준은 도대체 누가 세운 건가? 자신이 끝없이 타인을 비난하는 건 괜찮고, 교사인 내가 발 딛고 서있는 내 조직에 대해 내 생각을 밝히는 행위가 문제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판과 성찰의 성역이 생기는 순간 조직은 망한다. 내부비판과 외부소통이 필요하지 않은 조직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페절과 차단'으로 내 의사를 밝혔으니 그렇게 조용히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나를 소위 ‘적'으로 인식하는거야 개인의 자유이지만, 그렇게 공개적으로 떠들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성인인 우리가 그 정도의 판단력은 갖춰야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앞으로 스트레스 없는 온라인 생활을 위해 완전히 교류를 끊고 싶다. 이미 의사를 밝혔고, 다시 한번 요청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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