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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Sep 20. 2021

'오징어 게임' 리뷰

어머니, 소녀, 꽃뱀, 논개

스포일러 있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지난 9월 17일 공개됐다. 서바이벌 게임 장르, 걸출한 출연진, 러닝타임과 표현 수위 제약에서 자유로운 OTT 플랫폼 환경이란 점 등으로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나 역시 다른 건 몰라도 '오락성' 만큼은 뛰어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정확히 두 번 졸았고, 다섯 번 정도 귀를 후벼 팠다.       


유사한 전작들이 많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오징어 게임'이 일본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있고, 감독은 '신이 말하는 대로' 보다 '오징어 게임'의 각본이 더 이전에 쓰였다고 주장한다. 나는 참고 작품들이 있다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본다. '헝거게임', '배틀로열', '신이 말하는 대로', '도박묵시록 카이지', '데스게임' 등 해당 장르를 차용한 많은 작품들이 이미 존재한다. 서바이벌 게임 장르는 말 그대로 이미 '장르'이며 설정과 소재에서 새로울 것이 없다.


레퍼런스작들이 있다는 사실이 작품의 가치를 훼손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하드보일드 소설의 고전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 1953)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he Great Gatsby, 1925)의 자장 아래 있고, 1919년 프랑스 소설가 알랭 푸르니에의 '대장 몬느' 역시 대단히 유사한 구조의 소설이다. 우치다 다쓰루의 말을 빌리면 이 작품들은 소년기와의 이별이라는 '서사의 광맥'을 공유한다. 위대한 작품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끝없이 변주되고, 기실 그 기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오징어 게임'은 서바이벌 게임 장르의 계보 속에서 자본주의의 모순, 게임보다 잔혹한 약육강식의 현실, 무자비한 압제자와 신음하는 민중, 인간성의 종말 등을 묘사한다. 문제는 작품들의 선후관계가 아니다. '오징어 게임'의 곤란한 지점은 장르의 창조적 변용과 해석을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심지어 '오징어 게임'은 사람은 장기판 위의 말이 아니라는, (새롭지 않지만 중요한) 주제 의식을 창조적으로 그려내기 보다, 대사로 웅변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기훈과 (죽은 줄 알았던 노인) 일남의 대화는 압도적이다. 허무, 인간에 대한 불신 끝에 게임을 창조한 호스트 일남은 기훈과 함께 관객을 향해 주제를 일장훈시하고, 나는 게으른 학생답게 그 장면을 보다가 잠이 들어버렸는데, 심지어 졸다가 깼을때도 그 둘은 여전히 대화 중이었다. 물론 내 눈에 '신파'가 누군가에게는 '감동'이고, 내 귀에 '일장훈시'가 누군가에게는 선명한 '주제의식'이 될 수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의 여유를 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캐릭터 창조와 활용 측면에서, '오징어 게임'에는 변명의 여지없는 시대착오와 비윤리성이 존재한다. '오징어 게임'은 그야말로 스테레오 타입의 전형들로 넘쳐난다. 외국인 노동자 '알리'는 '사장님 나빠요' 블랑카의 환생 같다. 게임 참가자들 중 악역을 맡은 이들은 일관되게 잔인하고 비열하다. 반면 선한 역을 맡은 주인공들은 물욕이랄 게 없고 인생의 목표는 그저 '노점상을 하는 어머니에게 번듯한 가게 하나 차려드리는 것', '보육원에 있는 동생을 데려와 함께 사는 것' 정도로 소박하다. 게임을 지켜보는 VIP들은 늙고, 비대하고, 유치하고(끝없는 '69'말장난!), 혐오스럽다. 그중에서도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은 그야말로 악몽이다. 극 중 가장 비중 있는 여성 캐릭터 중 하나인 '한미녀'는 연신 '오빠'를 찾는다. 이름부터 '미녀'이기 때문에 극 중에서 '이름이 아깝다'는 조롱을 듣고, (극 중 유일하게) 나이를 문제 삼고, 아줌마가 아니라며 항변한다. 한미녀는 성행위를 대가로 생존을 보장받는 서바이벌 게임형 꽃뱀이었다가, 비열한 덕수에게 배신을 당하자 논개 역할로 생을 마감한다.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여성상은 딱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헌신적이고 거룩한 어머니, 보호받지 못한 소녀들, 그리고 꽃뱀과 논개.


나는 감독이자 각본을  분의 주제의식에 동의한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거나 단편적인 존재가 아니우리는 '장기판의 ' 아닌 사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 통해 그러한 주제의식을 살리고 싶었다면, 각본  인물들 역시 이렇듯 장기판의 말처럼 가볍게 창조하고 소비해서는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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