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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Nov 21. 2021

조조 래빗 (Jojo Rabbit)

윤리적 주체로 성장하기

얼마 전 6학년 수업 시간에 famous(유명한)이라는 단어를 다루게 됐다. 학생들에게 이 단어에서 떠오르는 인물들을 물으니 BTS, 문재인, 손흥민 등이 나왔는데 갑자기 한 학생이 아동 성폭행범 '조○○'을 언급했다. 다수 아이들이 깔깔 웃으며 그 이름을 호명했다. 나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그 사람이 떠오르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피해자들 입장에는 그 이름을 언급하며 웃는 상황이 온당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요." 내 말에 아이들은 웃음기를 거두고 동의한다는 표시를 보내주었고 수업은 계속됐다.


학생들과 영화 '토이 스토리'로 수업을 하던 중 장난감들의 주인인 앤디의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한 아이가 영화에 앤디와 앤디의 엄마, 여동생만 등장한다며 앤디는 아무래도 아빠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앤디는 아빠가 없대!"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또 정색할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있고, 우리는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아빠 없는 아이, 라는 말이 웃음의 소재로 쓰이는 게 옳은지, 그와 같은 형태의 가족 구성원들이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요."


날 것 그대로의 아이들의 모습은 그런 것 같다. 놀랍도록 순수하다. 회복력이 뛰어나고 강인한 유연성이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 경험과 사고력의 부족으로 인해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거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에 아직 서툴다. 나는 인간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타인이 처한 상황의 맥락에 흠뻑 젖어, 완벽하게 이입되는 경험을 해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하, 영화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음)


동화와 이입 그리고 성장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2019년도 영화 "조조 래빗"(Jojo Rabbit, 2019)의 주인공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엄마인 '로지'(스칼렛 조핸슨)와 단 둘이 살아가는 10살 독일 소년이다. 그는 조국에 대한 충성심, 자신의 용맹함을 증명하고자 나치 소년단에 입단한다. 하지만 토끼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겁쟁이라 놀림을 받고, 설상가상 수류탄 사고로 얼굴에 큰 흉터까지 입게 된다. 조조 곁에는 상상 속 친구인 히틀러가 늘 용기를 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는 엄마가 다락방에 몰래 숨겨 주고 있던 유대인 소녀 '엘사'를 발견한다. 조조는 공포와 충격, 배신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조조는 점점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엘사는 유대인이지만 소문과 달리 뿔이 없을 뿐만 아니라 흉측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박멸해야 할 해충 같은 존재라기에는 너무도 당당하고 강인하며 총명했다. 조조는 독일인의 자부심, 히틀러를 향한 충성심, 엄마에 대한 사랑, 엘사를 향한 우정의 감정들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영화에서 주인공 조조의 성장은 조조가 타인에게 자신을 "이입"하는 과정과 궤를 같이 한다. 영화의 초반부, 조조는 절대 권력자인 히틀러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후 엘사의 남자 친구였던 네이선에게 이입해 엘사에게 가짜 편지를 쓴다. 후반부에 이르면 조조는 엘사 역시 보통의 인간임을 깨닫는다. 온전히 마음을 열며 엘사의 입장과 처지를 상상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전쟁이 끝나고 조조와 엘사가 처음으로 함께  밖으로 나온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춤을 춘다.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듯 말이다.      


윤리적 주체로 성장한다는 것


영화 '조조래빗'은 아이들을 마냥 순수하고, 정의롭고, 완성된 존재로 이상화하지 않는다. 외적 보상과 미끼에 쉽게 흔들리고, 세뇌되고, 소속과 인정욕구로 인해 편향된 판단을 내리는 성인들이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배울 것이 있지만 한편 아이들은 특유의 무구함에서 비롯된 취약함이 있기 마련이다.    


나치에 대항하다가 처형된 사람들이 길거리에 목맨 채 걸려 있는 모습을 조조와 엄마 로지가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조조는 그 끔찍한 모습으로부터 시선을 피하는데 로지는 조조의 얼굴을 굳이 돌려 그 모습을 직시하게 한다. 로지가 아들 조조가 '유령'같은 존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대사가 있다. 국가와 민족에 충성하고, 전쟁과 정치에 열광하며, 타인을 무생물 내지 괴물 취급하는 사람들을 로지는 '귀신'같은 존재로 보았던 것이다. '유령'이란 말을 허깨비, 광신도, 주체성이 없는 사람들로 바꿔도 될 것 같다.   


영화에서 표현한 '유령'에 반대되는 개념은 '윤리적 주체' 쯤이 될 것 이다. 윤리적 주체로 성장하려면 대상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과 동정심을 품는 행위 이상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되어 보는 경험, 존재의 개별성과 내면적 깊이를 가늠해보는 경험,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헤아리는 경험 같은 것들 말이다. 이를 통해서만 우리는 윤리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고, 이를 마사 누스바움은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익살스러우면서도 슬프고, 귀엽지만 서사적 깊이와 짜임새가 있는 훌륭한 영화다. 히틀러로 변신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연기에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영화 '결혼 이야기'와 '조조 래빗'을 거쳐 나는 스칼렛 조핸슨의 팬이 되었는데, 로지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들은 지금 생각해도 코 끝이 찡할 만큼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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