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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un 06. 2022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

나는 너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시즌 4, 7편(파트 1)까지 나온 상태에서 썼고 스포일러 있습니다. (2022. 06. 06.)


오랜 시간에 걸쳐 제작되는 장편 시리즈에는 확실한 장단점이 있다.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시즌1은 2016년에 나왔다. 시즌2는 2017년, 시즌3은 2019년, 시즌4는 무려 3년이 흐른 2022년 5월에야 공개됐다. 시즌 사이 간격이 넓다 보니 새로운 시즌을 시작할 때 이전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 경우는 요약본이나 요약 영상 보기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시즌 4를 시청할 때 세부 사항 이해에 혼란스러운 지점들이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장점도 있다. 주인공들의 성장과 이야기 전개가 실제로 흐른 시간의 무게를 갖는다. 더구나 ‘기묘한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대부분 10대이며 성장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이 효과가 극대화된다. '몇 년 후' 같은 식의 자막이나 아역 배우 교체 같은 연출 장치를 쓸 것도 없이 인물들의 외모, 골격, 목소리 등이 달라져있다. 시간의 흐름이 손에 잡힐 듯한 양감을 구성하고, 알고 지낸 옆동네 친구들이 벌써 이렇게 자랐구나 싶은 느낌도 있다.


나는 너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시즌4 파트 1의 자타공인 명장면은 '맥스'의 탈출신이 될 텐데, 시간의 양감이 없었다면 이 정도로 가슴이 벅차진 못했을 것 같다. 시즌2에서 처음 등장한 맥스는 오락실 게임의 신기록을 경신하고, 스케이트 보드를 잘 타는 멋지고 당당한 소녀였다. 하지만 시즌3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특히 오빠인 빌리의 죽음으로 인해 죄의식과 불안, 우울의 늪에 빠져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고 결국 '베크나'의 저주에 걸린다. 임종을 앞둔 노인처럼 담담하게 마지막 편지까지 남긴 맥스는 베크나의 환영에 갇혀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위기의 순간 맥스를 구한 건 친구들과의 기억 그리고 맥스가 평소 좋아하던 케이트 부시의 노래 "Running Up That Hill"이었다.

https://youtu.be/bV0RAcuG2Ao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시즌4,  4편 'Dear Billy'의 한 장면


특히 맥스가 떠올리는 친구들과의 기억이 플래시백으로 연출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린 관객이 한 둘이 아닐 것 같다. 스토리와 연출, 장중한 편곡의 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관객들이 캐릭터의 성장을 지켜보며 애정을 품어왔고, 인물들 간 관계의 우여곡절을 이해하기에 감동이 배가 된다. 나 또한 이 장면을 몇 번이나 다시 봤고, 내 플레이리스트에 'Running Up That Hill'을 추가했다. 힘들고 불안하고 우울할 때, 과거의 회한과 환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고립으로 몰아갈 때 우리에겐 어떤 노래가 필요할까. 나는 너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줘야 할까. 나는 가까운 사람과 대화하며 진지하게 선곡 리스트를 작성했다.



왜 이 단순한 대결이 나를 울게 할까


개인적으로 '기묘한 이야기'가 몹시 사랑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이 시리즈가 가진 어두우면서도 키치하고 유쾌한 분위기 그리고 이상적이고 낙관적인 메시지와 세계관 때문이다. 사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의 대부분은 사실주의적이고,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경향이 있다(브레이킹 배드, 베러 콜 사울 등). 또 개인적으로 어떤 장르이든 주인공에 맞서는 악역 내지 대항마에 매력이 있어야 긴장이 생긴다고 보는 편인데, '기묘한 이야기'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 SF 판타지 장르이고, 뒤집힌 세계가 존재한다는 세계관과 선악 구도가 명확하며, 심지어 악역은 징그러운 괴수다. 작가가 던지고 싶어 하는 메시지 역시 분명한데 이는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 '엘'이 시즌 4, 7편에서 '원'과 대결을 벌일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인공 '엘'은 초능력이 필요할 때 화가 나고 괴로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분노의 에너지를 이용해 초능력을 끌어내도록 배웠다. 하지만 '엘'은 가장 위험하고 결정적인 순간 그 조언과 충고를 물리치고 본능적으로 다른 기억을 떠올린다. 갓 태어난 자신에게 어머니가 사랑한다고 말했던 경이롭고 따뜻한 순간 말이다. 사랑을 통해 '엘'은 각성하고 '원'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분노와 증오, 어둠은 빛과 희망과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글로 써놓고 보면 유치하기 그지없는 메시지다. 하지만 이 메시지가 평면적인 일장연설이 아닌 밀도 있는 스토리 전개와 캐릭터의 성장으로 구현되면 빛이 난다. 순진무구하고 아름다운 10대와 흉악한 괴수가 벌이는 전쟁을 바라보면서도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이유다.   


사실 어떤 진리나 마법 같은 순간도 말로 설명하려 드는 순간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말에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건 진리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창작자들의 능력이란 게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건 아닐 듯싶다. 흔하고 평범하고 우리 곁에 늘 함께 있지만 그래서 놓치기 쉬운 진실들을 잡아내고, 거울을 비추고, 힘을 부여하는 것이 창조성의 가치이자 본질일 수 있겠다.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시즌 4, 7편의 한 장면


노래의 전부가 멜로디가 아닌 것처럼


기묘한 이야기는 오랜 기간 던져온 떡밥과 단서를 꼼꼼하게 회수하는 이야기 구조, 입체적으로 성장해가는 캐릭터, 오락성과 시각 효과 등이 뛰어난 작품이지만 사람에 따라 진입장벽이 있을 수 있다. 일단 80년대 미국 인디애나주에 사는 10대들의 생활상이 문화적으로 낯설 수 있다. 초능력과 괴수가 등장하는 SF 미스터리 스릴러 같은 장르 자체에 호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오로지 '이야기'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면 유치한 청소년 호러물 정도로만 해석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취향의 차이, 해석의 자유를 감안하고라도 나는 '기묘한 이야기' 사랑스럽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다. 노래에서 '멜로디' 전부가 아닌 것처럼 '기묘한 이야기' 어느새 내겐 장르적 멜로디 이상이   같다. '기묘한 이야기' 멜로디 너머에는 어린 시절 내가 품었던 막연한 두려움과 환상, 흥분 같은 것들이 있다. "Running Up That Hill" 들으며 언덕을 오르면, 내가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이었던 시간들이 흐르고  안에 여전한 희망과 낙관 같은 것들도 마주할  있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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