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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Sep 22. 2021

강철 감성, 욕망하는 이성

내가 바라는 대표


전국 교육계 대표 130인, 이재명 지지..."사학비리 척결 등 공감"

https://newsis.com/view/?id=NISX20210909_0001578275&cID=10803&pID=14000




내가 만약 스스로를 '대표'라 칭한다면 둘 중 하나다. '교육계 또라이 대표'처럼 대놓고 나를 희화화하거나, 혹은 지금부터 약 10년 더 교육계에 뼈를 묻고 학문, 현장, 정책 전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고, 이에 더해 지역 사회의 신망과 정치력까지 갖춘 다음일 거다. '이렇게 해야만 대표라 칭할 수 있다'라는 뜻이 아니라, 막연한 내 개인의 기준이 그렇다는 말이다. 사실 '대표'라는 말의 허용 범위에 법적 혹은 객관적 기준이 있을 리 없다. 누구든 '대표'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주장이나, 부당한 참칭이라 보는 쪽이나 논리적 근거는 얼마든 끌어다 쓸 수 있다. 근본은 '감수성' 싸움이다. (그래서 자꾸 '너 혹시 이재명 싫어하니?'라는 쓸데없는 말이 나오는 걸지도 모른다). 만약 그분들이 교육계 대표 130인 선언을 향한 현장교사들의 날 선 반응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혹은 이게 왜 민망한 사태인지 여전히 파악이 안 된다면, 그것 역시 시대와 여론, 민주주의를 읽는 감수성의 부재 탓이다. 물론 누구나 입장을 밝힐 수 있고 이후 반대 여론과 엎치락뒤치락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민주주의는 의견이 충돌하고, 감성과 이성이 뒤엉킨 채 피곤하게 굴러간다.


모든 현상의 근본에 감성이 개입된다고 해서 '사실 확인' 소홀히 해야 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요즘 이재명 지사와 '대장동 개발' 관련한 기사의 9할은 쓰레기인데, 가뭄에  나듯 나오는 건실한 기사들을 확인해본 결과  문제로 이재명이 골로  일은 없어 보인다. 내가 평소 가장 싫어하는 속담  하나는 '아니  굴뚝에 연기 나랴'이다. 요즘 언론과 여론은 답을 정해놓고 매사 '아니  굴뚝에 연기 나랴'식으로 흘러간다. 감성이 필요한 자리에 이성을 들이대니 졸렬해지고, 이성적이어야   '아니면 말고'식의 배짱을 부려 신뢰만 낮아진다.   


사람들은 보통 감성과 이성이 제로섬 게임이라 보는 경향이 있다. 감정적인 사람은 이성이 약하고, 이성이 강한 자는 감정이 메말랐다는 식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볼 때 감수성과 이성은 함께 움직인다. 감정에 취하는 것과 감정을 에너지로 활용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정의와 진실을 향한 욕망도 강하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을 향한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교육계 '대표' 워딩 논란 끝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우리도 강철 같은 감성, 욕망 덩어리 이성을 갖춘 '대표'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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