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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Sep 28. 2021

자존감의 반격

나의 배우자는 반듯하고 뚜렷한 이목구비, 매사 침착하고 정중한 성품을 지녔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 통틀어 가장 반가부장적인 인물인데 오히려 무슨무슨주의자 같은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실제로 그런 지칭 따위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는 자존감이 매우 높고 관종력이라고는 일도 없는 사람이라, 외부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누가 뭐래도 차분히 자기 길을 간다. 자존감 높은 사람들과 지내봤다면 알겠지만 이런 사람과 있으면 덩달아 내 마음도 편안, 침착, 단단해진다.  


그런데 요즘,


이 분이 무슨 연유에서인지 긴 머리에 꽂혔다. 어...어? 하는 사이에 머리카락이 점점 길어지더니 그의 짙은 눈썹, 선명한 이목구비와 더해져 점점 대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이 되어가고 있다. 나를 포함해 그를 아는 모든 이가 '이건 아니다!'라며 만류하고 있지만 자존감 높은 사람답게 상처 따위 받지 않고 유유자적 자신만의 미를 추구한다. 나는 신경질, 짜증, 협박, 돈으로 회유하기 등 별의별 짓을 다하다가 근본적인 질문들에 봉착했다.  


인간에게 외모란 무엇인가?, 조건 없는 사랑은 가능한가?, 헤어스타일이란 무엇인가?, 내게 타인의 신체적 자유를 침해할 권리가 있는가?, 타인의 높은 자존감이 왜 나의 인격을 시험에 들게 하고 있는가 등등. 깊이 있는 고민을 선사해주신 훌륭한 배우자님, 

오늘도 고맙습니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안톤 쉬거'역의  하비에르 바르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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