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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Nov 22. 2021

가차 없는 독자

나의 첫 번째 독자는 늘 가차 없이 내 글을 평가한다. 글을 읽다 재미가 없으면 화를 내기도 한다. 글이 좋다고 느껴질 때 격한 칭찬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재밌네". 딱 이 만큼이다. 수년 전 단 한번, 글 한편을 다 읽더니 웬일인지 "놀랐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공개 후 그 글은 최고 조회수를 찍었다. 출판 제의가 들어왔고, 감동받은 어느 독자가 언론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내 첫 번째 독자가 보인 반응은 '놀랐어'가 전부였지만 나는 그에게 따지지 못한다. 사실 그 글의 초안을 그에게 공개했을 때 그는 혹평을 했었다. "말이 너무 어려워. 이렇게 교사들끼리만 아는 이야기를 뭐하러 쓰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는 글의 방향을 전면 수정했었다. 그는 절대 구체적인 방향은 제시하지 않지만 매사 의사표현이 확실하다. 애초 그가 혹평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초안대로 글을 끌고 갔을 거다. 


나의 첫 번째 독자, 나의 배우자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결혼 후 이 사람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처음 배웠는데 배우는데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중간에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는 일주일 내내 단 한 번도 짜증을 내지도 애써 위로하지도 않았다. 그저 계속 곁에 있다 함께 집에 돌아왔고 다음 날이 되면 다시 나가자고 권유할 뿐이었다. 내가 마침내 자전거 타기에 성공했을 때도 그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네가 당연히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깊게 느끼고, 디테일하게 음미하는 성격이다. 십 대 때는 똑같은 책을 수십 번씩 읽었고, 지금은 같은 영화를 수십 번씩 본다. (어디서든) 잘 웃고, (집에서는) 잘 울기도 하는데 특히 한번 울기 시작하면 놀랄 만큼 오래 울고, 긴 시간 동안 그 감정에 젖어있다. 배우자는 기복 없이 평온한 성품이다. 내가 똑같은 영화를 수십 번 보면서 울고 있으면 그 모습이 귀엽다며 곁에서 동영상을 찍는다. 나는 화를 내며 물었다. '혹시 사이코패스야?'; 물론 그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나를 보고 따라서 같이 울지 않으려고 일부러 카메라를 드는 게 아닐까 의심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어쩌다 나는 지금 영어교육에 진심인 사람이 되었지만 원래 전공은 사회과다. 영어 자체는 원래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었지만 진지해진 계기는 그 덕분이다. 신혼여행 때 그의 영어 능력에 놀라 자극을 받았고, 결혼 초기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투덜댔었다. 


"나는 교대를 나오는 바람에 못한 게 너무 많아. 어학연수도 못 갔고, 휴학도 못해봤고, 학교 밖 경험도 못해보고, 이제 결혼까지 해버렸어." 운전을 하며 묵묵히 듣고 있던 그가 말했다. 


"왜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렇게 젊은데. 그리고 절대 결혼 때문에 못하는 게 생겼다고 생각하지 마." 


그날부터 배우자는 내가 여름방학 동안 단기 어학연수를 갈 수 있도록 준비를 시작했고, 몇 주 후 나는 혼자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40일간의 소중한 시간이었고, 내 장기 여행 경험들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가 구름판을 놓아준 덕분에 만들어진 인생의 분기점이다.

 



어제 내가 브런치에 올린 영어교육 관련 글을 읽고 배우자는 '재미없고, 산만하다'는 평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두어 시간 드러누워 있다가 결국 글을 내려 수정 중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독립적이고, 가정적이고, 반항적이고, 다정한 배우자이자, 가차 없는 나의 독자다.

 

가끔 이 가차 없는 독자는 제쳐 버리고 내가 무엇을 쓰든 박수 쳐주는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다. 배우자는 교육이론이나 교육담론에 대해 전혀 모른다. 그가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왜 이걸 모르지?' 싶지만 그의 전공 분야에 대해 무지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혹평을 받으면 멘털이 흔들린다. 설명하고 되짚는 과정이 귀찮고, 길을 잃은 것 같은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잡글을 쓰면서라도 마음을 다잡는다. 무슨 말을 해도 이해해 주는 사람끼리 좋고 마는 글은 내게 의미가 없다. 나는 밖으로 뻗어나가 성장하고 연결되고 싶다. 가차 없는 독자들에게 가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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