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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Nov 23. 2021

서 있는 자리

학교 급식 미스터리

학교 급식을 15년 가까이 먹으면서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다. 영양교사 한 명의 역량에 따라 급식의 질이 천차만별이란 사실이다. 영양사가 달라지면 같은 학교에서, 같은 예산으로, 같은 인력의 노동으로 만든 식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급식의 질에 차이가 생긴다. 요즘 나는 우리 학교 급식에 대해 120% 만족하고 감탄하는데 과거부터 늘 이렇지는 않았다. 이전에는 한눈에 봐도 부실해 보이거나, 특정 영양소만 몰아 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수년 전 지역 내 모 초등학교 급식 사태 이후 학교들마다 급식의 질이 평준화되었다는 느낌은 있다. 그래도 영양사에 따른 급식의 질 차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급식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동료들끼리 '영양사 좀 바뀌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인간이다 보니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바람이지만 말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 께름칙하다. 요즘 일부 학부모들의 요구로 여러 학교에서 담임 교체가 종종 벌어진다. 구성원 간 갈등을 학교가 어설프게 처리하다가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는 경우도 많아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나처럼 급식실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영양사 좀 바뀌면 좋겠다'는 바람을 쉽게 표출한다. 하지만 이게 '모든 문제는 담임교사에게만 있고, 담임만 바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라는 사고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겠다.   


경험상 급식의 질, 급식 환경의 문제가 언제나 영양교사 한 명만의 문제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내가 오래 전 근무했던 학교의 한 영양교사는 그 학교에서 늘 칭찬이 자자했다. 학생과 교사 모두 만족했고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교사들이 영양교사를 찾아가 따로 레시피를 묻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후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간 그 영양교사에 대한 평을 듣고 나는 매우 충격을 받았다. 급식 만족도가 대단히 낮은 건 물론이고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져 징계를 받는 수준까지 몰린 모양이었다. 듣자 하니 그 학교 급식실 환경이 유독 열악했고, 조리사들과의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음식의 상태만 보고 '영양사 역량이 뛰어나다', '영양사 한 명만 교체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쉽게 하지만 문제의 뿌리는 깊고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급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느 날 나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냥 학구별로 가장 뛰어난 영양사 한 명이 식단을 짜고 모든 영양사가 베껴 쓰면 안 되나?' 그러다 문득 섬뜩해졌다. 코로나 사태 이후 한참 온라인 수업의 질과 교사들을 향한 성토가 터져 나왔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었다. "그냥 수업을 제일 잘하는 교사 한 명이 혼자 영상을 찍고,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영상을 보게 하는 게 효율적이다!" 얼핏 맞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만약 정말 그래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교직을 떠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수업과 교육의 본질 자체를 부정하는 사고관이기 때문이다.    


참 이렇게, 선 자리에 따라 보이는 세상이 다르다. 인간은 누구나 남의 입장과 사정에 대해서는 쉽게 생각하고, 말하는 경향이 있어 스스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오늘 점심시간에 급식실에서 맛있는 생선구이를 먹으며 들었던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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