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2018. 8. 15
중 1 때 미술 선생님은 예술을 정말 사랑하는 분이었다. 미술 이론이나 역사에 관한 설명을 늘 열정적으로 하셨고, 무언가 예를 들기 위해 칠판에 슥슥 그리는 그림은 (똥손인 내 눈에는) 늘 놀라울 정도로 완성도가 있었다. 선생님은 모네를 매우 사랑하셨다. “나는 모네 그림 한 점을 집에 걸어 놓고 늘 바라 볼 수만 있다면, 밥 안 먹어도 배 부를 것 같아...” 선생님은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이런 말을 했다. 그 당시 잘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참 순수하고 멋있는 여성으로 기억한다. 나는 지금도 미학이나 미술사 등을 접할 때마다 그 분이 떠오른다.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정도만을 생각하며 무작정 이탈리아에 왔다. 막상 내가 홀려 버린 화가는 루벤스이다. 서점이 보이면 무작정 들어가 루벤스에 관한 책을 뒤적인다. 밤에는 루벤스나 바로크 예술에 대한 유투브 영상을 본다. 내가 가장 보고 싶은 루벤스 그림이 러시아에 있는 걸 알고 고민에 빠지기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거실에 루벤스의 그림이 걸려 있다면 어떨까? 그림을 소유할 수만 있다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까? 글쎄, 내 경우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현실적이고 금전적인 이유를 떠나서. 루벤스의 그림이 있을 곳은 내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루벤스 그림 있는데, 보러 올래?” 왜인지 말하는 나도, 루벤스도 찌질해지고 말 것 같다. 사랑도 일도 그리고 글쓰기도 거리 두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루벤스도 마찬가지다. 왜 그때 미술 선생님은 거실에 모네의 그림을 걸어 두고 싶어 했을까? 잘은 모르지만, 그때는 지금만큼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괜히 혼자 생각해 본다.
아, 하지만 로마에서 내 옆에 두고 싶은 뭔가를 찾았는데 그건 의외로 자동차이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이런 차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지만 로마에 유독 많은 ‘스마트카’는 갖고 싶다. 1인용 차도 좋고, 운전 중 말 상대를 딱 한 명만 태우거나 짐도 실을 수 있도록 2인용 차도 좋겠다. 작고, 단순하고, 눈에 띄지 않는 편한 차가 내게 딱인 것 같다.
오늘 낮 로마에 한바탕 비가 내렸다. 미술관 예약 문제, 예상치 못한 휴일, 베니스에서 여기까지 날 따라온 빈대 등으로 좀 골치가 아프던 마당에 때 마침 시원하게 내리는 비였다. 비오는 날 찾아간 판테온은 사진과 비교도 안 될만큼 고풍스러웠다. 비가 오니 칼국수가 먹고 싶었지만 판테온 근처에서 먹은 따뜻한 파스타도 만족스러웠다. 근처 서점에서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찾았다. 괜히 약올리고 싶은 분이 있어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