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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Dec 18. 2021

혐오는 침묵의 담을 타고

경기도교육청 웹툰 논란

얼마 전 경기도교육청의 웹툰이 북한 찬양 논란에 휩싸였다. 신청인이 사연을 보내면 그려주는 코너인데 한 초등교사가 전한 2학년 수업 시간 모습이 문제가 됐다. 북한의 소풍과 운동회 장면을 보고 아이들이 ‘북한 가고 싶다!’라는 말을 한 장면 등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교육청은 즉각 사과 후 게시물을 삭제했지만 징계요구, 국민청원, 교원단체 성명이 이어졌다. 많은 초등교사들은 황당했다. 저학년 통합과목에서 ‘통일’ 주제 단원 ‘북한의 생활’ 관련 수업을 하면 어린이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북한은 어린이날이 두 번이라는 교과서 내용을 보고 ‘와 북한 좋다!’라고 말한다.     


현재 삭제된 해당 웹툰의 일부


학교에서 북한조선소년단이라도 양성하고 있을까 봐 걱정인 분들은 안심해도 좋다. 6학년쯤 되면 아이들은 북한과 김정은에 대해 막말을 일삼는다. 막말의 90%는 김정은의 외모와 북한의 경제 수준에 관한 내용이다. 북한 관련 비하 표현은 자주 비만, 동물, 빈곤 등과 연결되고 수위도 높다. 내가 “비판은 외모가 아니라 인물의 구체적 행위와 결과, 사회 체제나 제도 등을 대상으로 해야 합니다!”라고 훈계해야 할 정도다.

      

6학년 학생들이 자주 쓰는  다른 혐오 표현은 ‘게이’, ‘트랜스젠더처럼 성소수자 집단과 관련된다. 해당 어휘들로 말장난을 하는 아이들을  해도 빠짐없이 만나왔다.  생각에는 사춘기가 되어 성에 관심이 많아진 학생들이 불안과 혼란을 성소수자 집단에 투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얼마   6학년 학생이 쉬는 시간에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 그러면 김정은이  게이 여자친구 !" (번역:   말대로  해주면 김정은이 너의 게이 애인이 )

     

즈음 마침 우리는 영화 'Sing'(2016) 나오는 노래 "I'm still standing" 배우던 중이었다.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했는데, 영화에서는 태런 에저튼(Taron Egerton) 부르지만 원곡자는 80년대 엘튼 (Elton John)이다. 나는 엘튼 존이 애니메이션 '라이온 ' 주제가를  대히트 싱어송라이터이자, 역사상  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곡(Candle in the wind) 주인공이란 점을 안내했다. 그리고 엘튼 존은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한 게이란 사실을 덧붙였다. 21세기 청소년들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방적 사회를 만들기 바란다는 말을 폼나게 뱉었지만 사실 교실에 보수성향 기독교계 가정의 학생이 있을까  조금 쫄았.

Elton John and Taron Egerton

              

연구에 의하면 각종 낙인과 박해 중에서도 가장 끈질긴 것이 젠더 관련 혐오다. 나도 실생활에서 체감한다. 같은 아파트 라인에 굉장히 친절한 이웃이 산다. 주차장에서 작은 접촉사고가 있었을 때도 호의를 베푸셔서 굉장히 감사했다. 그런데 얼마  그분 자동차 트렁크에 붙은 스티커를 보고 경악했었다. "동성애 입법 반대".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서도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항목이 끝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혐오 감정은 원초적인 본능, 강력한 인지적 요소가 결합된다. 특정 사회의 문화와 풍토도 영향을 끼친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이 좋아서, 6년 동안 선생님과 함께 있고 싶어서 ‘북한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해도 종북 논란과 색깔 논쟁이 펼쳐지는 곳이 한국 사회다. 또 요즘 선거철이어서인지 부쩍 거리에 ‘동성애 입법 반대’ 현수막이 많이 눈에 띈다. ‘차별금지법’은 15년째 계류 중이고, 민주당 대선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 공약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 항목은 제외할 수 있음을 밝혔다.   

    

나는 아이들의 언어에 유독 북한, 김정은, 성소수자 관련 혐오 표현이 많은 것이 이러한 사회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혐오는 가장 약한 고리를 타고 터져 나온다. 사실 나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이산가족이 만나도 감정의 동요가 없을 만큼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천진난만한 말들에까지 종북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반북정서가 종교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공식 교육과정은 통일과 동포의식을 강조하고 있으니, 이 정도로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문제에 대한 합리적 토론과 사회적 대화가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특정 주제가 종교의 형태를 띠면 이성적인 토론은 불가능해진다. 성소수자 집단을 배척하는 주류 세력이 보수 개신교계란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나도 사상검증과 정체성 시비는 귀찮고도 두렵다. 하지만 그래서  목소리를 높여본다. 혐오란  그렇다. 비판적 사유가 가장 무디게 작동하는 , 상투적인 사고와 이미지가 만연한 , 괜히   건드리면 더럽게 엮일 듯한 , 사상검증의 제단에 오를까 두려워 침묵하는 곳에서 혐오는 만개한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많은 말을 하고,  많은 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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