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희 Mar 06. 2022

떨리는 목소리

진지한 의견을 나눌 때는 말보다 글이 편하다. 소수와의 수다는 즐겁지만, 다수와 함께 할 때는 말을 많이 하거나 주도하는 편이 아니다. 무엇보다 다수 앞에서는 내 생각이 잘 조직되지도, 전달되지도 않아서 답답하고 힘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예전에는 청산유수 달변가,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펼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여전히 그렇지만, 이제 마냥 부럽지만은 않다. 


확신에 차서 막힘없이 자신의 의견을 선명하게 주장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남의 말'을 재생하고 있는 것 같다. 어딘가에서 들은 말, 책에서 본 말, 으레 하는 말 등이다. 자신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입력된 말이라서, 내뱉을 때도 그렇게 확신에 차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반면 한 사람의 내면에서 고민과 경험이라는 필터를 거친 생각이 발화되면, 그 언어의 겉모습은 오히려 더듬더듬, 뒤죽박죽 혼란스러울 수 있다. 내 경우 불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 때문에 오히려 신뢰하게 된 사람도 있다. 


어쨌든 나는 여전히 말 잘하는 사람들이 조금 부럽다. 유용한 기술을 장착한 느낌, 준비된 사람의 느낌, 매사 확신을 품은 느낌 때문인 것 같다.  왠지 그분들은 잠도 잘 자고 똥도 잘 쌀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분들과의 대화가 재미없다. 그들의 언어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생성된 언어가 아니라는, 나와 함께 존재하는 이곳에서 탄생한 언어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기야 너의 생각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