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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Mar 09. 2022

선거날, 정치기본권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의 당위성에 당연히 동의한다. 하지만 언젠가 정치기본권이 보장되더라도, 나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당장 가입하고 싶은 정당이 없고, 소셜미디어에 지지 정당과 후보를 드러내고 싶지 않으며, 특정 후보 지지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싶은 강렬한 욕망도 느껴본 적 없다. 법적으로 금지되어서가 아니라,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내 개인 성향 때문이다. 교실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학생들에게 지지정당이나 후보를 밝힐 생각이 추호도 없다. 지금도 그런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있지만 당연히 대답하지 않는다. 평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나 기준은 밝힐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법과 같은 외부 검열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대한 내 개인적인 관점이 그렇다. 


최근 일부 퇴직교사분들의 정치 활동이 활발하다.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 지지 선언도 하고, 제자들에게 특정 후보 투표 권유 문자를 대량으로 보내신다. 일단 퇴직자라서 법적인 문제는 없고, 현직에 있을 때 억눌렸던 기본권을 누리고자 하는 열망도 이해하며, 개인의 자유 차원에서 존중한다. 다만 나로서는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정치 활동이라기보다 전도 활동, 종교활동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관계에 기반해 기준을 세워 상대를 설득한다기보다, 개인의 신념과 믿음을 일방적으로 설파하는 것처럼 보여서다. 죄송하지만 내가 제자라면 이런 문자를 받고 거부감이 들 것 같다.  


후세대 교사로서도 아쉽다. 교사 정치기본권 문제의 첨예한 대립각 중 하나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특정 가치와 이데올로기를 주입할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우리야 안다. 교사가 휴일에 자유롭게 교회나 절에 가고 기부금을 내는 것처럼, 학교 밖에서는 교사도 정치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소셜미디어 같은 개인 공간에서도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하지만 교사가 공무상 알게 된 (옛)학생들의 폰으로 개인 메시지까지 보내는 건 (심지어 퇴직자라도) 나로서는 급브레이크가 걸리는 사안이다. 이것이 정치기본권을 정당하게 활용하는 방식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이런 사례들을 다수 일반 시민들이 안다면, 정치기본권에 대해 어렵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교육현장에 도움이 되는 사례로 작용하지 않을 것 같다. 사안을 '당위성'의 차원으로만 보지 말고, 좀 더 세세한 결까지 봐주길 바라는 내 기대가 너무 높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내 생각은 그렇다. 


..참 여러모로 시끄럽고 혼탁한 선거였다. 한 일도 없이 괜히 수고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그간의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일거다. 내일은 또 내일의 스트레스가 찾아오겠지만 오늘만큼은 모두 푹 쉬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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