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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Apr 04. 2022

교육 정치, 이분법을 넘어

이전 세대 진보 성향 교사들에게는 세상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이해하는 습관이 있다. 지난 대선 때 악몽 같은 바닥을 보았는데, 교육감 선거가 다가오면서 더 깊은 바닥을 보게 될 듯한 예감이 든다. 많은 분들이 지적했듯, 이번 대선 결과의 책임은 대통령 후보로서의 이재명보다 소위 '문파'들에게 있다. 그들은 정치를 '문(이) 대 반문(반이)'으로 단순히 규정했다. 내집단에게 한없이 너그럽고, 반기를 든 누구든 물어뜯으며 환멸 바이러스를 전파해 결국 자신들이 지지했던 세력을 오만과 독선으로 이끌고, 패배를 안겼다.


교육계도 비슷한 패턴이다. 일부 자칭 진보성향 교사들은 진보교육감은 '선', 보수교육감을 '악'으로 규정한다. 그분들은 진보적 교사들은 당연히 진보교육감, 전교조 조직후보를 지지해야 한다고 전제하는 듯하다. 집토끼 취급을 하다가 이견의 조짐이 보이면 '역사의 은혜도 모르는' 혹은 '고생 안 해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 잡배 취급을 하기도 한다. 어떤 선배들은 조합원 다수가 함께하는 온라인 그룹에 특정 대선후보 혹은 교육감 후보 사진을 '당연하다는 듯' 게시한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갑작스레 정치기본권이 없는 설움을 말한다. 물론 심정은 이해하며, 교사 정치기본권 확보의 당위성에 동의한다. 하지만 현재 내게 실질적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건 정치기본권 박탈 상황이 아니다. 진보적인 교사라면 무조건 진보 후보에게 호응해야 한다는 선배들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인식, 세상을 흑백논리로만 바라보는 단순하고 폭력적인 관점이 내겐 실제적인 위협이다. 교육은 어차피 보수와 진보의 가치 모두가 중요하다. 진보와 보수라는 타이틀 보다, 누가 더 포월적으로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는지, 누가 더 구체적인 비전과 능력을 보여주는지가 관건이다. 


현실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단순하고 안일한 관점 때문에 현장, 특히 초등 교육현장에서의 연대는 이미 아사리판이다. 나는 학교 공무직과 행정직을 악으로 규정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일부 교사들의 저열한 인식과 행태, 타교원노조의 조직 확대 방식에 반대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발생 중인 직종 간 갈등을 회피 내지 부정하고, 무조건 '노노갈등은 안 된다'며 개입을 거부하는 태도 역시 동의할 수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노동조합은 '절대선'이 아니다. 이미 많은 노동조합이 이익 집단화되었다. 노동조합의 이익 추구 행위가 지탄받을 일은 아니나, 적정선을 넘어 공익에 해를 끼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진보의 진짜 실력을 도덕성에서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구성원들의 이익 추구 욕망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조화롭게 구성하는 능력이다. 연대는 누군가의 일방적 희생과 도덕성이 아닌, 사회의 운영 원리로써 실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입술 깨물며 일부 선배들에게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후배들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존경심을 품게 하는 건 과거의 투쟁과 헌신이 아니라, 현재 선배 교육인으로서 보여주는 '교양과 품위'이다. 더불어 절제와 책임감, 자기비판과 반성 능력까지 갖춘 선배라면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 않아도, 후배들은 당연히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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