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국가, 나라, 시민, 서사적 상상력

by 김현희


‘국가’와 ‘나라’는 용례가 비슷하지만 단어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 국가는 법, 정치, 행정의 측면이 강하고 나라는 문화, 언어, 역사, 민족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특정 국가의 정책과 시스템에 관해 이성적이고, 가치 중심적으로 접근하기는 쉽다. 반면 ‘나라’에 관한 비판과 호불호는 접근 방식에 따라 미묘하고 복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한국, 일본, 미국의 국가 시스템과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측면이 많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한식과 일식이고 미국 대중문화에 익숙하다. ‘나라’ 개념도 개인적인 호불호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공격과 배제보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포용과 공존의 태도를 우선시할 필요가 있다.


‘시민’은 권리와 의무를 가진 주체를 말한다. 시민 사회의 개념은 다양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제적인 국가에 항거하는 자유롭고, 평등하고, 자발적인 조직을 칭하는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 제도가 갖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필수 규범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관점도 있다.

위의 개념들 자체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현실은 매우 복잡하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분쟁은 기본적으로 정부 정책 즉 국가적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양국의 오랜 역사와 민족의식이 뒤얽혀 나라 간의 분쟁으로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를 적절히 제지하는 시민사회의 기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고 나 또한 공감하는 바가 크다. 다만 시민사회가 상식과 가치에 기반해 연대하는 그림, 연대의 방법적인 측면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상상해 볼 뿐이다.

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거친 농담을 자주 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너희들은 잉여 자원’ 이란 말이었다. 영어 원어민 강사들은 모국어를 잘하는(!) 대학 졸업자 자격만으로 한국에서 좋은 처우를 누린다. 이것은 여전히 존재하는 제국주의적 질서 때문이며, (고전적 제국주의 시대의 잉여 자본의 투자처럼) 너희들도 잉여 자원으로 팔려온 게 아니냐는 농담이다. 써놓으니 기겁할 내용이지만, 우리는 이런 대화 속에 깔깔 웃었고 생각의 고리를 이어갔다. 비판의 잣대는 모국과 타국, 인종과 민족을 가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소통이 가능했던 기반은 세 가지 정도였다.

먼저, 개인은 국가와 분리된 독립적 존재라는 인식이다. 이 부분이 명확해야 역사와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이 개인을 향한 공격의 칼이 되지 않는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적절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는다. 예를 들어 노예제도, 미국의 부도덕한 전쟁, 한국의 문화지체 등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과거일 뿐이며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한 유체이탈 화법을 써버리면 깊은 소통과 성찰은 일어날 수 없다. 역사가 만든 공과 과는 현재의 사태들, 개인인 나와 연결되어 있고, 이는 시민으로서의 책임의식과 주인의식으로 연결된다. 셋째는 자존감이다. 자국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을 세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할 수 있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존감 말이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시민사회의 건강한 연대에 필수적인 요소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추측해 본다. 또 '상식과 가치'에 기반한 연대도 중요하지만, 신뢰와 우정 그리고 (누스바움이 말한) 서사적 상상력을 기본으로 한 개인 간의 연대가 먼 훗날 더 근본적이고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이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덧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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