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가 살던 2층 주택집의 가장 꼭대기에, 좁고 높은 내 방이 있었다. 가끔 친구들이 놀러오면 입을 떡 벌리고 “너는 도대체 이 다락방에서 혼자 뭘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깜짝 놀랐다. 그 방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 심심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책보고, 음악 듣고, 여름밤에는 방에 딸린 작은 문을 열고 나가 정원의 나무들을 내려다 보았다. 가끔 부모님이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읽던 소설책을 치우고 교과서나 참고서로 바꿔 놓았다. 친구들은 대부분 아파트에 살았다. 친구들 집에 놀러가면 나도 깜짝 놀랐다. 거실 티비 소리가 들리고, 누구든 아무 때고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공간에서 사생활도 없이 어떻게 사나 싶었던 것이다.
내 부모님은 예나 지금이나 여행을 즐기지 않고, 나도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도 떠도는 것 그 자체가 좋은 건 아니지만 무언가에 이끌려 다니고 있을 뿐이다. 흔히 여행을 통해 견문이 넓어진다는 말을 하는데 나로선 애매한 표현이다. 나는 내가 자란 그 작은 방과 지금 내가 누비고 다니는 세계가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어릴 때 그 작은 방에서 처음으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도 만났고, 하루키와 친구도 되었고, 라디오헤드와 존 콜트레인도 들었다. 어디든 가고, 누구든 만날 수 있었다. 그 방에 혼자 누워 음악을 틀고 눈을 감으면 소리로만 가득한 풀장에서 수영을 하는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작은 방은 내 온 세계이자, 내 성격을 잉태한 자궁 같은 곳이다.
지금은 그 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나 아닌 누군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끔 상상하는데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