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점심때 대형마트 내 식당에 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데 비교적 젊은 정치인 한 명이 명함을 나눠주고 있었다. 재빨리 훑으니 '민중당'이다. 나는 정중히 명함을 받고 안녕히 계시라 인사도 했다. 명함 뒷면의 이력을 보니 카이스트 졸업자이고 학생 운동하다 이 길로 들어선 듯 했다. 나와 동행인은 ‘카이스트 나와서 참 묘하게 풀린 케이스네..’ 라는 말을 나눴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만약 저 자리에 자한당 후보가 서 있었다면 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쌩깠을 가능성이 백프로다. 민주당이면 한번 째려본 후 명함은 받지만 곧 버린다. 정의당이었다면 눈 마주치고 예의상 입꼬리를 한번 올려 인사한다. 민중당 후보가 준 명함은 굳이 읽어보기까지 한다. 호감이 아니라 호기심 때문이다. 이석기를 한번도 지지한 적이 없지만 그는 너무 오랫동안 감옥에 있다. 구운동권들에게 화석같은 면모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사람 마음 편하자고 이석기 하나 보내고, 정당 하나 날린 걸 당연시 하는 사회의 공기도, 화석처럼 느껴진다.
2.
점심을 먹은 곳은 샐러드바를 이용하는 식당이었다. 와구와구 먹고 또 일어나려는데 입구에 스무명쯤 되보이는, 검은 패딩 속에 교복을 갖춰 입은 중학생들이 보였다. 나와 동행인은 눈을 마주치며 ‘에잇 망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식당이 아주 시끄러워질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학생들은 적당히 활기찬 발걸음으로 음식을 가져가 조용히 먹고, 조곤조곤 대화를 했다. 물론 우리 테이블로부터 거리가 다소 떨어져있기도 했지만, 확실히 20명의 학생들이 모여있는 것치곤 정돈된 분위기였다.
문득 엊그제 일이 생각났다. 며칠 전에 우리학교 6학년 학생들이 중학교에서 배치고사를 보고 왔다. 나는 아이들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었다. “중학교 가보니까 어땠어요? 누구 만났어요? 아 그리고 언니 오빠들은 친절하게 대해줬어? 어때 보였어?" 날 보며 생글생글 웃다가 한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이랑 비슷하던데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하니 다른 학생이 '선생님이 동안이라는 뜻이에요' 라고 했다. 외모 부분이야 분명 농담이다. 하지만 '선생님이랑 비슷하던데요?' 라는 말이 어딘가 마음에 박혀들었다. 나의 '중학교 언니 오빠들이 어때 보였어?'라는 질문에는 분명 어떤 저의와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나야말로 총천연색의 '중학생들'을 프레임에 가둬 화석화하고 있는게 아닐까?
3.
낮잠을 한숨 때리고 저녁을 먹으러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 칼국수 집에 갔다. 집 근처에 큰 대학이 있어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점심 때 중학생들에 대한 나의 편견을 돌아봤던 터라 대학생들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일어 슬쩍슬쩍 사람들을 관찰했다. 4쌍 정도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조용한 말소리들이 적당한 소리로 틀어져있던 티비 소리와 잘 어울렸고 특이한 지점은 보이지 않았다. 국수를 반쯤 먹었을 때 50대로 보이는 6명의 일행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식당은 삽시간에 시끄러워졌다. 소음에 민감한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하지만 오늘의 교훈을 잊고 싶지는 않았다. 중장년의 무리들을 화석화하지 말자. 결국 최선의 호의를 담아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청력이 감퇴해 말을 크게 할 수 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