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코로나 시대의 사랑

by 김현희

나는 건강한 편이다. 무쇠 팔에 무쇠 다리, 병치레 한번 없는 체질까지는 아니지만 건강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가끔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비타민 먹고, 암막 커튼치고, 최선을 다해 죽은 듯이 잔다. 그러면 대개는 낫는다. 내게 건강함의 척도란 심폐지구력, 유연성, 체질량 지수 같은 것보다 ‘예민함과 분별력’의 개념에 가깝다. 자신의 신체 흐름을 인지하고, 반응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나는 타고난 체력이 좋지 않거나, 질환이 있는 사람이라도 정갈하게 자신을 돌보고 있다면 '건강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물론 의학의 영역과 상관없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내 견해다.


오늘 집 앞의 야트막한 산에 올랐다.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데 한낮 시간대인데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간만에 신선한 공기를 흡입하며 기분 좋게 걷고 있는데 6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멀찍이 스치며 중얼거렸다. ‘마스크를 껴야지. 에이그...’ 순간 위축됐고 조금 억울했다. 나는 지금 발열을 비롯한 어떤 징후도 없고, 신체상태도 양호하다. 손은 항상 자주 씻고, 기침 예절도 평생 지켜왔으며, 낯선 사람들 곁으로 가지도 않았다. 나와 타인을 위해 평생 고수해 온 습관, 내 몸 상태에 대한 자각은 아무 상관 없는 시절이다. 인적 드문 산속에서조차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졸지에 잠재적 전파자 취급을 받는다.


만연한 공포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과할 정도로 조심해야 하는 때란 말에도 수긍한다. 하지만 치명률 0.5%의 질병이 온 사회에 잠재했던 불안과 혐오와 배타성을 일깨우는 것 같다는 의혹은 지우기 어렵다. 정치인들은 이만희의 시계 따위에 열을 올리고, 시민들은 대구 봉쇄와 중국인 입국 금지를 외치고, 비상근무 중이던 공무원들은 과로로 쓰러지고, 취약 계층은 생계의 공포에 짓눌린다. 코로나 뿐만 아니라 기본 생활 습관, 예민함과 분별력도 건강함의 척도일 수 있다는 내 주장에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겠지만 어느 때보다 주장하고 싶다. 신체의 고통은 의학이 해결하겠지만 사회의 고통과 정신의 고통은 정치와 시민들의 연대로 풀어가야 한다.


낯선 이에게 눈흘김을 당하고 터벅터벅 산에서 내려오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려 보았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 코로나 시대의 관용, 신뢰, 이성, 연대, 분별력, 평정심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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