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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ul 31. 2022

맨 눈으로

2017. 7. 31. 

(2017. 7. 31에 썼던 메모 백업)


내가 닉네임으로 글을 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남자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실명을 알고 나서도, 여자 이름을 가진 남자일 거라 생각한 분이 여럿이다. 그 중 많은 분들이 본인의 편견을 탓했다. 그러나 난 그 분들이 영 틀린 추측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나는 감정이입을 잘하고, 예민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일을 하는 방식에는 (사회에서 흔히 규정하는) 남성성도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오히려 직장에서 나와 늘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람들이 그걸 눈치 못 채는 경우도 다반사다. 어느 쪽의 편견이 더 강한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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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지식은 이해를 돕는 동시에 편견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1879년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발견했다. 전문가들은 구석기인의 솜씨치고는 ‘너무나 정교’하다며 위작판정을 내렸다. 그들이 편견을 인정하고 공개 사과를 하기까지 23년이 걸렸다. 추상적인 사고능력이 ‘덜’ 발달한 구석기인들의 묘사는 (후대인들에 비해) 놀랍도록 생생하고, 정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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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Joshua Bell)이 남루한 몰골로 미국 워싱턴 지하철역에 섰다. 350만 달러를 호가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들고. 그가 아름다운 클래식을 연주하는 한 시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사람은 겨우 7명. 모금된 돈은 27달러였다. 값비싼 옷과 공연장, 언론의 주목이라는 아우라가 걷히고 나니 그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취향과 관점에는 강한 사회적 함의가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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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정보와 배경 지식은 이해를 돕는 요소이자, 방해하는 요소이다. 가끔은 계급장 다 떼고, 맨 눈으로 봐야만 보이는 것들도 있다. 편견은 복잡하고 끈질기다. 사람은 모두 머리 속에서 각자의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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