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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Aug 04. 2022

조퇴를 한다/ 권리와 전문성, 함께

(2022. 7. 9.) 조퇴를 한다

학교 교사들의 금요일 대거 조퇴 현상은 내가 볼 때 경제논리로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임금 기준, 가장 적은 노동시간을 확보해야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와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어차피 학교와 교육당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적 노력, 즉 다면평가와 성과급 기준안에 제시되지 않는 노력은 없는 존재 취급을 한다. 그러니 측정할 수 없고, 기록에 남지도 않아 지위나 경제적 보상 등으로 환원되지 않을 전문성 향상 노력에 시간과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교육자로서의 수십 년의 헌신과 이력이 단 한 번의 악성 민원때문에 날아가버릴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학교일에 몰두하거나, 열정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기획할 필요가 없다. 사회를 잠식한 경제논리, 넘쳐나는 교육권과 학습권 침해 사례, 수사 과정을 방불케 하는 학폭이나 민원 처리 등의 과정을 통해 학생과 교사들은 학습하고 있다. 최소의 금액으로 최대의 만족을 얻자. 나의 책임은 줄이고, 타인의 책임은 한껏 높이자. 


요즘 학교는 '오컴의 면도날' 즉 사고 절약의 원리를 충실히 따라야 가늘고 길게, 가성비와 가심비를 높이며 살수 있다. 나는 학교와 사회에 점점 만연해져 가는, 지금으로선 출구도 보이지 않는 이 면도날의 원리가 언젠가 칼이 되어 돌아오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나 혼자 고민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몸이라도 편한 곳에 앉아 쓸모없는 책이나 읽자 싶어, 어제도 조퇴를 했다.



(2022. 7. 10.) 권리와 전문성, 함께


조퇴 사용은 백안시할 것도, 권장할 것도 없는 법적 권리이다. 아래 글에서, 마치 내가 금요일 조퇴 사용이 그 자체로 '나쁜' 행위이고, 이 현상이 구조적 문제가 아닌 교사들 '개인'의 문제로 본 듯 논점을 왜곡하지 않길 바란다. 교원의 복무를 주시하는 시선은, 현재 '행정업무 때문에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없다'는 교직사회의 공적인 요구를 외부에서 반박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자칫 업무정상화란 과제 자체가 요원해질 위험이 존재한다. 


외부비판과 별개로 바라볼 지점은 없나. 사회는 여전히 교직을 전문직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나는 교사란 전문직 노동자이고, 교육 전문성이란 실재하며, 교사는 전문가로서 성장해야 한다고 본다. 전문직과 다른 직업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전문직은 '기술적 합리성' 이상의 다층적 지식, 재해석과 통합, 반성적 실천 능력 등이 복합적으로 요구된다. 학교 외부에서 '애들 교과서 가르치는 게 뭐가 어렵나?'는 말이 나오는게 황당한 이유는, 수업은 이미 정해진 지식과 기술을 효율적으로 '전달'만 하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움이란 늘 과정 중에 있고 당장은 그 쓸모와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 가르치는 일도 마찬가지다. 교사의 일을 '공문처리 다했고, 다음 날 수업 준비 다했고, 그러니 할 일 끄읕!' 이란 기술적 형태로 정리하기 어렵다. 물론 누구나 매일의 일상은 그렇게 흘러가지만, 추상적인 영역에선 그렇게 정리할 수 없는 것이 교사의 일이자 교육 전문성의 특징이다. 


물론 교사의 일은 집약적 노동이란 특성이 있다. 한국은 이슈가 터질 때마다 책임을 학교로 몰아가는 사회라서 이렇게라도 권리를 찾아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든다. 또 학교에 남아야 일이 잘되는 사람이 있고, 주말이 다가오면 조퇴해서 쉬고, 가족도 돌보고, 문화생활도 즐겨야 공적 활동이 원활해지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나도 후자에 가깝고, 조퇴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으며 다시 말하지만 개인의 선택은 자유다. 규정을 지킨 이상 비난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함께 고민해 보고 싶다. 혹시 우리가 노동자의 '권리'에 매몰되어 교육의 '전문성'을 헐값에 내다팔고 있지는 않은지. 교사의 권리와 전문성에 대한 합의를 함께 이끌 방법은 없는지. 외부에서 뭐라 하든 '권리'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해서야 이 상황의 조율이 가능할지. 교육공무원법 41조 연수와 연가의 균형, 다른 공무원들과의 형평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갖게 될지 등에 대해 말이다. 


이런 고민과 문제제기 자체를 또 내부총질이라고 몰아간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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