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영원히 산다

2022년 여름 여행 마지막 후기

by 김현희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건 '물'이다. 마시고, 만지고, 헤엄쳤던 물.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던 걸 물으면 대답하기 민망했다. 유럽을 한 달 가까이 떠돌다 돌아와 '물'이 가장 좋았다는 대답에 상대방이 '으응?' 하는 표정을 짓는 건 둘째 치고, 그간 한국은 폭우 피해가 엄청났고 반지하에서 참변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둘을 굳이 연결 짓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상황에 마음 편히 여행할 수 있는 내가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기 때문인지, 물 이야기를 하는 게 미안했다.


물만큼 좋았던 건, 쉴레의 그림들이다. 여행을 시작할 때 처음 갔던 레오폴트 미술관에서 쉴레의 그림을 보고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라고 썼었는데 취소한다. 체코에서 빈으로 다시 돌아와 벨베데레에 갔고, 내 기준에서 쉴레의 최고작들을 만났다. 특히 "The Embrace(Lovers II)"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너와 나만 남긴 채 세상의 모든 것이 소거된, 그 친밀하고도 연약한 상황과 감정을 이 그림만큼 절박하게 보여준 그림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Egon Schiele- The Embrace


에곤 쉴레는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고, 반항적인 성격, 클림트와의 관계, 여성들과의 스캔들과 투옥 이력 등으로 유명하지만 나는 이 그림을 보고 난 후 쉴레의 사생활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증발해 버렸다. '둘만의 닫힌 세계'를 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화가라면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여행의 마지막에 쉴레의 그림을 보고 돌아와 내가 다시 찾아 읽은 책의 제목은 '사랑의 현상학'이다.

"관능을 통해 연인들 사이에 성립되는 관계는 근본적으로 보편화와 맞지 않는 것이며, 사회관계의 대극에 있다. 그것은 제삼자를 배제하는 친밀성, 둘만의 세계, 닫힌 세계, 특별히 비공공적인 것이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 (우치다 타츠루의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에서 발췌)




지난여름 내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생체 리듬은 시계처럼 정확했고, 한국 음식이 전혀 그립지 않았으며, 비타민을 챙겨 먹고, 운동하고, 밤이 되면 미련 없이 불을 끄고 자는 것만으로도 몸이 가뿐하고 매일 힘이 났다. 느긋한 도시의 흐름이 나와 잘 맞는 듯해서 이대로 유럽에 눌러앉을까 고민했을 정도다.


반면 돌아오는 시간은 힘들었다. 비행기에서 승무원이 나눠준 브라우니를 잠결에 먹다가 체했다. 배우자가 공항으로 깜짝 마중을 나왔는데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데만 5초 이상이 걸릴 정도로 머리와 위장이 뒤죽박죽이었다. 비가 대차게 쏟아지는 바람에 인천에서 대전까지 5시간이 걸렸고, 고속도로 휴게소 티브이에서는 젊은 정치인이 기자회견을 하며 비린내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비엔나에서의 PCR 검사에서 음성, 한국에서의 검사도 음성 판정을 받아 마음을 놓고 편히 쉬려는데 갑자기 학교 원어민 교사가 미국 집에서 코로나에 걸려 돌아올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시차 부적응으로 인한 수면부족 상태로 영어캠프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이리저리 전화를 돌렸다. 쨍쨍하던 며칠 전과 달리 다크서클이 주렁주렁 걸리기 시작하면서 여름이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었지만.


사실 나의 일부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인스브루크의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알프스에 걸린 하늘을 본다. 프라하의 시민회관에서 소박한 좌석의 표를 구해 클래식 공연도 감상한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나는 비엔나 미술관 지구의 횡단보도를 쉼 없이 건너고 있다. 나의 일부를 건네준 만큼 지난여름도 내 안에 있다. 귀국하자마자 혼란의 도가니 속에 캠프를 운영하면서도 '우리 이김에 위기관리 능력을 길렀다고 생각하자'라고 다독이는 내 안에, 엉킨 일정 속에서도 성실하게 참여해준 아이들에게 무한히 감사한 마음 안에도 느긋하고 맑고 진했던 지난여름이 남아 있다.


프라하의 화약탑 내부에는 방문객들이 자기 이름을 몰래 새긴 흔적들이 남아있다. MJ라는 이니셜에 1957년이라고 적혀 있어 깜짝 놀랐는데, 심지어 1844년이라고 새긴 글씨를 보자 기분이 묘해졌다. 누군가의 일부는 저렇게 영원히 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화약탑에 아무것도 새기지 않고 내려왔다. 나는 이미 내 방식대로 내가 간 곳들에 나의 일부를 남겼고, 그 장소의 일부를 내 안에 새겼다. 만약 내가 화약탑에 글씨를 새겼다면 이렇게 썼을거다.

Live Forever, 2022 여름.

화약탑에서,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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