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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워싱턴

2019년 8월

by 김현희

1.

워싱턴에 도착하니 조금 숨이 트였다. 뉴욕처럼 고층 건물이 즐비한 것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여유 있는 쾌적한 행정 도시 느낌이었다. 링컨 기념관, 국회의사당을 거쳐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향했다. 내셔널 갤러리에 볼만한 작품들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드가 그림이 좋아 앞에서 한참 머물렀다. 드가는 인상파 화가지만 애매한 구석이 있다. 순간적인 광경을 묘사하는데 집중하면서도 견고한 윤곽선, 인공적인 조명, 3차원적인 깊이를 강조한 면에서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결이 다소 다르다. 실제로 드가는 “미술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야외에서 그림 그리기를 싫어했고 “어떤 미술작품도 우연적이지 않다”, “미술은 자연이 아닌 인공의 산물이며, 범죄만큼이나 교묘한 계획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나는 드가의 발레 그림들에서 인물들이 그림 바깥으로 잘려나간 듯한 표현이 왜인지 좋은데, 이는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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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년 이탈리아 여행이 생각나는 그림들이 많았다. 판테온에서 보고 반했던 천장을 워싱턴에서 그림으로 만나자 순간 너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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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FCE4652-18AF-400A-A770-644BE2785A8C.jpeg 2018년 여름 이탈리아 판테온

베니스 그림을 보다 순간 빨려 들어갈 뻔했다. 그림이 훌륭해서라기보다,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저 구역을 누군가 그림으로 묘사했다는 게 신기해서였다. 베니스에서 바가지 쓰고, 길 잃고, 빈대에 물려 잔뜩 짜증이 나서 두 번 다시 현지 식당이나 호텔에 가고 싶지 않았다. 어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우연히 합리적인 가격에 음식을 파는 중국 음식점을 찾았고, 며칠 연속으로 그곳만 갔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하염없이 멍해져 앉아 있었다. 아래 그림의 오른쪽이 바로 그 식당이 있던 자리이고,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 걸린 이 그림은 1743년 Bernardo Bellotto가 그렸다. 베니스에서 개고생을 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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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실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의 첫 인상이 크게 좋지는 않았다. 무심결에 아시아 예술관 쪽을 먼저 돌았는데 전시하는 방식이 너무 틀에 박혀 있어 기분이 나빠질 뻔했다. 아시아쪽 그림과 조각들은 특유의 다소 어둡고 신비로운 조명 아래, 심지어 희한한 음악까지 배경으로 깔고, 조심스레 배열되어 있다. 전시 방식이나 창의성 측면에서 별로 인상깊지 않지만, 세계 최대의 박물관이 무료 입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고맙게 여길 부분이다.


워싱턴에서 3일 쯤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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