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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반스 파운데이션

The Barnes Foundation

by 김현희


이번 여행의 꽃은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반스 파운데이션The Barnes Foundation’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다른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더니, 급기야 마법처럼 듀이가 나타났다.


반스 파운데이션

알버트 반스 Albert C. Barnes


반스(Albert Barnes, 1872-1951)는 필라델피아 서민 출신으로 의과대학에 진학해 학위를 받고, 1902년 항염증제 개발 사업에 성공한다. 이후 상당한 부를 축적한 그는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더불어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당시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데 그의 컬렉션은 181점의 르누아르, 69점의 세잔, 59점의 마티스, 46점의 피카소 작품 등을 포함해 4천여 개에 이른다.

모마, 메트로폴리탄, 보스턴 등 걸출한 미술관이 존재하던 상황에서 한 개인이 독자적으로 이 정도 수준의 작품들을 수집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다. 더 놀라운 점은, 그는 이 작품들을 사고팔아 부를 축적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교육에 관한 열정이 강했던 반스는 수집한 작품들을 본인의 공장 노동자들에게 보여주고, 주기적으로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흑인, 빈민들의 예술 교육에 관심을 쏟았다. 1922년 로어메리온에 반스 파운데이션을 설립하고, 1923년 최초로 전시회를 개최하는데 당시 필라델피아 미술 비평계는 그의 컬렉션을 쓰레기라 평가한다. 꼬장꼬장한 닥터 반스 역시 지지 않고 맞받아 친다. 필라델피아 미술계는 예술과 지성의 매음굴이자 슬럼가라고 말이다.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IS A HOUSE OF ARTISTIC AND INTELLECTUAL PROSTITUTION” / “PHILADELPHIA IS A DEPRESSING INTELLECTUAL SLUM” -Albert C. Barnes


이후 반스 컬렉션은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그 어떤 미술관도 따라올 수 없는 독자성과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실제로 마티스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반스 파운데이션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The Barnes Foundations is the only sane place to see art in America-Henry Matisse"


마티스가 그린 벽화



논란

반스는 그의 선구적인 예술관과 진보적 정치관으로 인해 미술 비평계나 정치가들과 끊임없이 날선 공방을 벌였다. 그는 자신의 컬렉션을 절대 메리온에서 옮기지 말 것, 대여하지도 팔지도 말 것, 정치나 문화 산업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교육적인 목적으로만 이용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반스의 충직한 후계자인 디마지오(Ms. Dimaggio)는 충실히 그 뜻을 따랐으나, 그녀마저 죽고 난 후 반스 파운데이션은 위기에 처하고, 그의 컬렉션은 경제적 이권과 정치권력의 개입에 휘말린다. 반스는 결혼은 했지만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반스의 유언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은 대개 반스 파운데이션에서 공부했던 이전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관련된 사업가와 정치가들을 ‘최대의 문화 약탈자’라 비난하며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반스의 유언은 끝내 지켜지지 못한다. 긴 법적 공방 끝에 반스 컬렉션은 필라델피아 시내로 옮겨지게 된다.

참고 다큐멘터리: Art of the Steal

https://www.youtube.com/watch?v=opOczQeFIb4&list=RDopOczQeFIb4&start_radio=1


백화점과 학교

홀린 듯이 작품을 감상하다 나는 문득 내가 굉장히 매력적인 학교에 와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스 컬렉션은 보통의 미술관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작품 옆에 일일이 설명이 적혀있지 않다. 통상의 미술관들이 그렇듯이 연대, 장르, 역사적 맥락에 의해 배열된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라틴아메리카 조각 옆에 세잔의 그림이, 그 옆에 아프리카 마스크가, 그 위에 자물쇠가 배치되어 있다. 또 벽 구석에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고흐 작품 중 하나가 던져지듯, 르누아르와 나란히 걸려있는 식이다. 처음에는'아니 네가 왜 거기 있어?"라는 생각이 들지만 흐름을 보면 이해가 되고 이내 감탄하게 된다.



반스 컬렉션은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들처럼 그저, 거기에, 무더기로 걸려있지 않다. 반스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예술을 ‘가르치기’보다,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 그의 컬렉션은 빛, 선, 색, 공간 원칙에 따라 배열되어 콜렉터의 미적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 통상의 미술관과 달리 어떤 설명도 되어 있지 않으나 내가 감응하며, 배우고 있다는 느낌은 거기에서 왔던 것 같다. 반스는 지나친 이론화나 틀에 갇힌 주입을 경계하고,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 자체를 경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쯤 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존 듀이 John Dewey

경험으로서의 예술

반스와 존 듀이 John Dewey는 각별했다. 듀이는 저서 ‘경험으로서의 예술’을 대부분 반스 파운데이션에서 집필했고, 반스의 검토와 의견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경험으로서의 예술' 서두에 듀이가 반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글이 담겨 있기도 하다.


반스 컬렉션은 굉장히 선명하면서도, 매력적이다. 미술관을 돌다 보면 누구 작품인지는 알겠는데 별 매력이 없다거나, 그림 자체는 좋은데 작가의 개성의 선명하지 않은 그림들이 있다. 반스 컬렉션은 작가의 고유성이 가장 분명하면서도 매력 있게 표현된 작품들이 즐비하다. 교육적 맥락으로 바꾸면, 어떤 교육적 경험 역시 선명하고 가치가 있으면서도,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컬렉션에 둘러싸여 자연스레 느꼈던 감정의 동요를 학생들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통상의 미술관들은 서양 작품, 아시아 작품, 아프리카 작품 등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배치한다. 공간을 구분하고, 다른 조명을 사용하고, 구성을 통해 조성하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반스 컬렉션은 문화권별로 이들을 구분짓지 않는다. 예술적 관점으로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있다. 교육처럼 예술도 그 자체가 삶이다. 아시아인이든, 유럽인이든, 아프리카인이든 우리 삶의 정수를 가로지르는 예술의 언어가 있고 그곳에 희망이 있다. 반스 파운데이션은 반스와 듀이 교육 철학의 예술적 현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쇠라, 세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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