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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그리운 그림

Museum of Fine Arts, Boston

by 김현희


‘밀레(Jean-François Millet)’의 ‘씨 뿌리는 사람’(The Sower, 1850).

밀레.jpg The Sower, 1850, Museum of Fine Arts, Boston


유명세에 비해 소박한 위치인, 출입 통로 옆에 걸려 있었다. 원래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생각보다 더 크고, 어둡고, 역동적이었다. 사실 크기, 색감, 구도 같은 것이야 한참 후에야 눈에 들어왔을 뿐 처음에는 그저 숨을 멈추고 바라보기만 했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 작품에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읽었다. 이전까지 하찮고, 어리석게만 그려지던 농부들을 커다란 캔버스에 존엄하고, 숭고하며, 심지어 영웅처럼 그렸다는 면에서 사회 전복적인 의미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정작 밀레는 참여적인 예술가 성향이 아니었고, 농부들과 친하지도 않았으며, 본인의 작품이 그렇게 해석되는 것을 불편해했다고 전해진다. 글쎄,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밀레는 농부들을 그저 관찰한다. 미화하지도, 동정하지도 않고 바라보고 있다. 실제 밀레는 프랑스 '사실주의' 유파로 분류된다. 나는 이 그림에서 숭고한 농부의 모습보다는 강인하고 외로운 사람이 보인다. 밀레의 정치 성향이 어쨌든 내게 어떤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의지는 ‘세상을 바꾸자’, ‘인간은 평등하다’는 흔한 구호로 드러나지 않는다. 내게 보이는 건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려는 의지',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같은 것들이다. 랑시에르라면 ‘평등의 의지’라고 표현했겠지. 그런 맥락에서 보면, 당시 보수 성향 비평가들이 이 그림을 선동적이라며 혹평했던 이유를 대략 알 것도 같다.


명성에 걸맞게 보스턴 미술관에는 대단한 작품들이 많았다. 고갱의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을 단 한 개만 고르라면, 밀레의 The Sower를 뽑을 것이다. 정말 그립다.


'호머'(Winslow Homer)의 '안개 경보'(The Fog Warning, 1885)

1200px-Winslow_Homer_-_The_Fog_Warning_-_Google_Art_Project.jpg The Fog Warning, 1885, Museum of Fine Arts, Boston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이 그림이 있었다.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본 이후부터 호머의 그림 모두를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호머는 미국 최고의 해양화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뉴욕에서 본 그의 후기 작품들은 회색 하늘과 검푸른 파도, 바람의 묘사가 주를 이루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보스턴에서 본 이 작품 '안개 경보'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내 취향을 알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자연과 맞선, 어딘가 외롭고 강인한 인간의 내면에 늘 끌리는 사람인 것이다.


20190828_143129.jpg 호머, 보스턴에서
KakaoTalk_20190906_102955574.jpg 호머, 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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