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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여성 화가들

로사 보네르, 메리 캐사트

by 김현희

미술 역사에 남은 여성 화가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여성 화가들 작품이 보이면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열아홉 살 때 우연히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고 전율이 일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좋지만 대중화되면서 너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감이 있긴 하다. 미술관 상점에 들어가면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유하지 않은 미술관에서조차) 프리다 칼로 그림을 어린이용 교재나 달력 등으로 이용한 상품들이 많다.


그 외에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인 '젠틸레스키'(Antemisia Gentileschi, 1593-1653)가 많이 알려져 있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Judith Beheading Holofernes, 1620 c.

작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한참 멈춰서 바라보았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라는 같은 주제의 그림을 카라바조와 젠틸레스키는 다른 모습으로 형상화한다. 카라바조가 유디트를 어리고, 주저하는 모습으로 그렸다면 젠틸레스키는 힘 있고 강단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 그림을 책에서 처음 봤던 어린 시절에는 젠틸레스키가 여성 화가인지 몰랐다. 여성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남자 작가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젠틸레스키는 19살에 동료 학생에게 강간을 당했으나 (오히려 본인이 고문을 당하며) 재판 과정에서 고소 철회를 종용당했고, 결국 범인이 무죄 석방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품은 인물이었다. 저 그림이 뿜어내는 분노의 출처를 알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기억에 남는 여성 화가는 메리 캐사트(Mary Cassatt, 1845-1926)와 로사 보네르(Rosa Bonheur, 1822-1899)이다.


Mary Cassatt, Little Girl in a Blue Armchair, 1878

메리 캐사트 Mary Cassatt는 인상주의 화가였고, 그중에서도 드가와의 관계가 밀접했다. 드가는 까다롭고 괴팍한 성미로 유명했지만 그런 그조차 캐사트의 그림을 처음 보고, 여자가 자신만큼이나 사생을 잘한다는 사실에 신기해했다고 한다. 캐사트는 펜실베이니아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을 금지하는 사회에 반대해 파리로 떠났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에는 여성이 혈연관계가 없는 남자와 단둘이 있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캐사트가 그릴 수 있던 남성은 아버지, 오빠들, 드가가 전부였다.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았던 캐사트의 ‘Little girl in a blue armchair’는 느슨하게 중앙을 벗어난 구도, 밝고 분명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캐사트는 사회주의자이자, 여성 참정권 운동을 강하게 지지했던 인물이었다.


Rosa Bonheur, The Horse Fair, 1852–55


로사 보네르 Rosa Bonheur는 19세기 동물화 장르에서 독보적인 프랑스 여류 화가이다. 동물에 대한 관심이 집요했던 그녀의 집에는 산양, 공작, 닭, 송아지와 같은 가축들이 화실 안팎을 자유롭게 거닐었고, 보네르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면 개들이 주위에 원을 그리며 누워 있었다고 한다. 사실 보네르의 동물 그림들은 피나는 연구의 결과다. 그녀는 유명한 이 작품 ‘마사장’(The Horse Fair)을 그리기 위해 몰래 남장을 하고 파리의 마시장에 들어가 일 년 반 동안 스케치를 했다. 해부학적 지식을 얻기 위해 도살장에서 일한 기억을 ‘피투성이가 되어 일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보네르는 그림만큼이나 용맹하고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머리를 짧게 깎고, 여자 친구와 살며, 담배를 심하게 피워 논란이 불거지자 경찰이 허가를 해줘야 하는 소동도 있었다. 로사 보네르는 여성의 권리를 당당했게 주장했던 첫 번째 페미니스트 화가다.


뉴욕, The Met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잘 모르겠다. 나는 십 대 초반에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고 감동을 받아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했었다. 사회 곳곳에 차별적 요소가 무수히 존재하며, 여성의 권리는 당연히 신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에 관한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니다. 사실 페미니즘뿐 아니라 인권, 노동, 법 다 좋지만 하나의 주제어로 깔끔하게 구분 짓는 교육이나 운동에는 왠지 몰입되지 않는다. 운동의 구호가 선명하면 그만큼 드리우는 그늘도 짙다. 인권이든 성평등이든 교조화되거나, 팔기 쉬운 상품으로 전락하거나, 진실의 단면만을 부여잡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전체 안에 있는 전체만이 의미가 있다. 맥락 없는 구호는 마음을 멀어지게만 한다. 내가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인간이자 여성인 내가 삶으로 증명하고 싶다. 설명하고 이끌기보다, 진실된 에너지가 우연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면 좋겠다. 이런 방식만이 옳다는 게 아니다. 이게 내 방식이라는 뜻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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