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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Oct 04. 2023

손이 많이 가는 사람

2023 06. 25.

나의 오랜 별칭 중 하나는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다. 언니가 그 말을 자주 했었는데 결혼 후에는 배우자가, 최근엔 우리 지부 사무처장님도 같은 말을 한다(우리 지부장은 이상하게 손이 많이 가는군). 길기만 한 내 손은 누가 봐도 야무지지 않다. 요리 능력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고, 사람들은 내 요리를 괴식이라 칭한다. 한 번도 내 손으로 공과금을 내 본 적이 없으며 내가 하는 가사 노동은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기 뿐이다. 우리 부모님은 결혼 10년이 지난 지금도 배우자를 볼 때마다 '아이고 김서방이 고생이 많지'라고 하신다; 내가 사는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지부 정책실장님도 틈만 나면 학*님에게 잘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아래 글 '복수는 너의 것'에서 내가 '배우자의 속이나 한번 시원하게 해주고 싶다'라고 했던 건 선전포고가 아니라 진심이다. 우리 관계에서 실질적인 뒤치다꺼리를 많이 하는 건 확실히 배우자 쪽이다. 모든 관계에 장미와 정원사가 있다던데 우리 관계에서 장미는 나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배우자는 행복하다, 고 한다. 내가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거나, 집안을 어지럽히거나, 온 집안의 불을 모조리 켜놓고 돌아다닐 때는 화가 나지만 어쨌든 나는 창의적 활력을 불어넣는 사람이다. 해주는 대로 와구와구 먹고 쌕쌕 거리며 자는 모습을 보면 모든 화가 풀린다고;(구토 금지)


어쨌든 나처럼 생활력이 부족해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은 본의 아니게 끝없이 주위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모자란 덕분에 사회적 분업의 의미를 몸으로 깨닫기 쉽고,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알며,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서로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노동은 평등하다는 걸 절감하기도 한다. 


이 나이 먹고 이 정도로 구멍이 많다는 게 결코 자랑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재능은 제각각이고, 나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작게나마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다. 또 언제까지나 주위 사람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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